다른 사람이 나를 멸시하도록 허락했다
발자크는 하루에 40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4시간만 자고 매일 같이 글을 썼던 '글 쓰는 노동자'였다. 그가 그토록 치열하게 글쓰기에 매달린 것은 빚 때문이었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빚에 쫓기며 지냈다. 동시에 화려한 귀족들의 취향과 삶을 동경했고,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아낌없이 사치를 즐겼다.
발자크는 생전에 <인간희극>이라는 거대한 계획을 세웠다. 137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을 통해서 당시 프랑스의 모든 계급과 인간 유형을 다루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137편을 완성하지 못하고, 9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고리오 영감>은 그의 연작 <인간희극>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부르봉 왕조가 권력을 회복했던 시기, 경제적으로는 자본적의가 자리 잡기 시작했던 혼란의 시기. 그 무엇보다 돈이 우선하는, 돈이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상을 담고 있다.
과거 제면업자로 큰돈을 번 고리오 영감
두 딸 '델핀과 아나스타지'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재산을 바치고
허름한 하숙집에서 가난한 생활 한다.
상류사회로 진입해 귀족과 결혼한 딸들은
아버지의 헌신을 기억하지 않는다.
단지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좇을 뿐.
심지어 비천한 상인이라며
아버지의 일마저 부끄러워한다.
고리오 영감은 일을 그만두고
딸들이 원하는 대로
귀족적인 외양을 갖추려 노력한다.
그가 가진 모든 돈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들에게 전해지고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딸들의 외면뿐이었다. 그때서야 고리오영감은 깨닫게 된다. "내가 그 애들을 너무 사랑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도록 허락하고 말았구나"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고리오 영감을 딸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것일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이 내어주며 두 딸을 한 없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인간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결국 고리오 영감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의 죽음을 통해 당시 '프랑스 장례문화'를 상세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소설을 자료로 사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편 순진한 대학생 라스티냐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돈과 욕망'으로 얼룩진 파리 사회의 민낯을 깨닫게 된다. 고리오 영감의 초라한 장례식에서 라스티냐크는 파리를 바라보며 성공에 대한 야망을 새롭게 다진다.
"이제 파리야, 너와 나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