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유의지는 있을까?
일 때문이긴 하지만, 요즘 나의 화두는 단연 '마음'이다. 우리가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긴 했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도 의식이나 마음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
<엔드 오브 타임>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의식의 본질'을 생각하다 보면 완전히 다른 것 같으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한다. "첫째 물질은 의식을 창출할 수 있는가? 둘째 자율적인 의식은 두뇌와 몸을 구성하는 물질에 물리법칙이 적용된 결과에 불과한가?"
물질은 의식을 창출할 수 있는가?
사람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와 분자의 결합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원자와 분자에는 사고 능력이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입력하고, 조율하고, 데이터를 추출한다. 1950년대 말에 코카콜라사의 시장조사 연구팀이 영화필름 사이에 광고 화면을 끼워 넣어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던 것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두뇌는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에 기초해서 어떤 선택을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좋다, 싫다'라는 마음이 느끼는 감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란 말인가?
마음도 없고, 생각도 없고, 감정도 없는 입자의 무리가 어떻게 생각과 음악을 느끼고, 사랑과 증오를 느끼고,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는 말인가? 입자는 질량과 전기전하를 비롯한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지만, 주관적 경험과 완전히 무관하다. 그런데 두뇌 속에서 진행되는 입자의 운동이 어떻게 감정과 감각과 느낌을 낳는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인간은 매일 같이 온갖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감정이 생성되는 과정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만들어낸 기본 재료는 커피잔의 기본 재료와 동일하다. 커피잔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그들 사이에 작용하는 바로 그 힘이 복잡다단한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식을 물리학으로 풀면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미스터리가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면 종교로 풀어볼까? 불교에서는 '일제유심조'를 말한다. 모든 것이 마음이 짓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단순히 상징이나 은유로만 이해할 일은 아니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관측'이 어쩌면 마음을 뜻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전 물리학에 따르면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 아니면 뒷면, 둘 중 하나다. 관측자가 동전을 보지 않으면 결과를 알 수 없지만, 동전이 상태가 이미 둘 중 하나로 결정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면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이곳에 있을 확률이 50%이고 저곳에 있을 확률이 50%라는 것은 '전자는 이곳 아니면 저곳, 둘 중 하나의 위치를 이미 점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관측이 실행되지 않는 한, 전자는 이곳에 존재하는 상태와 저곳에 존재하는 상태가 모호하게 섞인 이상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관측이 실행되면 무조건 한 장소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방정식으로는 확률이 한 장소에 갑자기 집중되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두 번째 질문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할까?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지만, 자유는 있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당신과 나는 어디까지나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입장의 집합일 뿐이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두뇌를 가로지르는 입자들이 낳은 결과이며,
우리의 행동은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나타난 결과다.
우리의 개성과 가치, 그리고 자존감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타협을 모르는
물리 법칙이 낳은 결과라면
자유의지는 발 디딜 곳이 없어진다.
우리는 우주의 냉정한 법칙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장난감에 불과한 것 같다.
지금 당신은 이 책을 읽는 것이
자유의지를 발휘한 결과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몸에 속한 입자와 움직임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해가 뜨는 순간 지는 시간이 결정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행동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원인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지금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과연 우리는 애써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정답은 '있다'이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지만, 내일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또 저자 브라이언 그린의 말대로 어떤 현상에 대한 반응은 내 몫이다. "내가 자유로운 것은 물리 법칙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거대한 내부 조직이 나로 하여금 자유롭게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해방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