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해야 하는 이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다. 가정에서 국가로 범위를 확장해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할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밝히고 있는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제도'때문이다. 국가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바로 ‘제도’라는 것이다. 실패한 국가들은 '착취적 제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착취적 정치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가 맞물리면서 끊임없는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대로 성공한 국가들 역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포용적 제도'라는. 그리고 이 포용적 제도 역시 정치제도와 경제제도가 맞물리면서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시에라리온 VS 보츠와나
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 '보츠와나'는 내전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돼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수출의 약 80%를 차지하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권리를 국가에 귀속시켜 강력한 재정 기반을 만들었고 '교육과 의료, 도로' 등 공공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했다. 포용적 경제제도가 포용적 정치제도의 생명력과 내성을 길러주는 선순환 전개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에라리온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는 그러지 못했다. 다이아몬드를 놓고 끊임없이 싸웠다.
최초로 대규모 다이아몬드 매장지가 발견된 곳은 세레체 카마의 고향인 은과토 부족의 땅이었다. 다이아몬드 발견 사실을 발표하기 전에
카마는 모든 지하 광물에 대한 권리가
부족이 아닌 국가에 귀속되도록 법을 바꾸었다. 보츠와나에서 다이아몬드 때문에
엄청난 부의 불평등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다이아몬드 관련 수입을
정부 관료 체제와 사회간접자본 및
교육 투자 재원으로 활용이 가능했으므로
중앙집권화 과정도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시에라리온과 다른 여러 사하라 이남 나라에서는 다이아몬드가 서로 다른 집단 간에
분쟁이 초래되고
내전이 끊이지 않는 원인이 되었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살육전으로
'피 묻은 다이아몬드'라는 오명이
생겨났을 정도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수입을
국익을 위해 사용했다.
역사적 분기점에서의 선택
제도 외에 국가의 흥망성쇠에 큰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역사의 전환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영국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이었다.
명예혁명으로 왕과 가신의 권한은 약화되었고 경제제도를 결정할 권한은 의회에 귀속되었다. 동시에 사회 각계각층이 폭넓게 참여하는 정치체제가 마련되었다. 사회전반이 정부의 기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명예혁명은 다원적 사회를 만드는 발판을 마련했고 더 나아가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세계 최초로 포용적 정치제도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명예혁명이었다. 그 영향으로 경제제도 역시 포용적으로 바뀌어갔다.
산업혁명은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면서 결정적 분기점을 만들었지만, 모두가 잉글랜드처럼 고속 성장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오스만제국과 중국 등 여러 절대주의 정권은 산업의 확산을 아예 막거나 장려하지 들지 않았다. 그 결과 뒤처질 수밖에 없다. 기술혁신에 대한 반응은 정치, 경제 제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인쇄술만 하더라도, 오스만제국은 '인쇄 금지'로 맞섰다. 그전까지 지식은 일부 엘리트층이 장악하고 있었다. 인쇄술은 이러한 기존 질서를 파괴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경제제도'이며,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라는 것이다.
너 나 없이 돈을 벌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개인의 고군분투는 빛을 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 시기다. 우리가 투표로 뽑아놓은 그 사람이 제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니,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