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트 위의 세 남자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진지함

by 효문

여행은 어디로 떠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떠나는지는 더 중요하다. 여행 갔다가 싸웠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혼자 가도 거울 바라보며 싸우는 게 여행이니 말이다.


<보트 위의 세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게으른 세 남자와 폭스테리어 개 한 마리가 배를 타고 킹스턴에서 옥스퍼드까지 템스 강을 따라가는 여행기이다. 이들이 짐을 싸는 순간, 아니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다섯 번째 멤버로 이들과 함께 했다면 이 소설은 코믹소설에서 바로 스릴러소설로 장르가 변경되리라는 것을. 내가 미쳤거나 그들이 미쳤거나 혹은 내가 템스 강에 빠졌거나 그들이 빠졌거나 했을 테니까.


여행을 떠나기 전 날 밤, 이들을 짐을 쌌다. 짐을 싸고 보니 아침에 쓸 칫솔이 안 보여 다시 풀어헤친다. 우여곡절 끝에 부츠 속에서 겨우 칫솔을 찾아내고 한밤중이 된 후에야 짐가방을 닫는다. 하지만 아직도 광주리에 는 싸야 할 짐이 남아 있고, 이번에는 두 친구가 짐을 싸기 시작한다. 컵을 깨뜨리고, 버터를 밟고, 소금을 사방팔방 흘리고, 물건에 걸려서 넘어지고, 급기야 서로에게 저주를 퍼부으면서...

이런 난리 북새통 같은 짐 싸기 뒤에 작가는 삶에 대한 통찰을 덧붙인다.


인간이여, 잡동사니를 버려라!
당신의 보트 인생을 가볍게 하라.
필요한 것만으로 채우라.
소박한 집과 꾸밈없는 오락거리,
이름값을 하는 친구 한두 명,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고양이 한 마리, 개 한 마리,
그리고 파이프 한두 개,
간소한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
그리고 조금 풍족한 마실 거리,
갈증은 위험한 증상이니까.

이제 노 젓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보트가 뒤집힐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뒤집힌다 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질 좋고 소박한 제품들은
물에도 끄떡없을 것이다.
일하는 시간 말고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생의 햇살을 들이마실 수 있는 시간,
인간의 심금을 연주하는 바람의 신이 들려주는
풍성한 음악에 귀 기울일 시간…


<보트 위의 세 남자>는 1889년 영국에서 출간된 코믹소설이다. 출간 당시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으며 20만 부가 팔려나갔고, 해적판만 100만 부 넘게 팔린 초특급 베스트셀러란다. 이 소설 덕분에 템스 강이 유명해지고 BBC에서는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단다.

하지만 나는 속이 터졌다. 시종일관 쏟아지는 영국식 유머를 보면서 '왜 웃기지?' 싶었고, 세 얼간이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내 친구가 아니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인 제롬 자신이며, 게으르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두 친구 조지와 해리스 또한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눈물 코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지만, 웃음 코드는 국경을 넘어가면 통하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맞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건 내 얘기이고, 만약 '미스터빈'이나 '순풍산부인과'를 재미있게 봤다면 이 책에 매료당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은 애초에 루트를 따라 명승고적을 탐방하는 진지한 여행 가이드로 기획됐다고 한다. 실제로 역사적 사실과 풍경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다. 물론 코믹하게. 배경 지식이 없어서 더 공감하기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3명의 미스터빈 같은 이들은 좌충우돌 여행을 이어가면서, 숱한 사건사고를 겪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를 향해 매서운 말의 칼을 휘두르지만 상처받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인 건가? 또 놀랍다. 이런 난리 북새통을 겪고도 이 순간이 지나면 그걸로 끝이다. 뒤끝? 없다.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냥 없었던 일이 된다. 도대체 어떤 성격이면 그게 가능할까?


어쨌든 7살짜리 어른들 3명이 사고를 치면, 작가는 그다음에 꼭 한 마디씩 덧붙인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것을 가져야 한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혼 사람에게는 아내가 있지만, 그들이 아내를 원할까? 총각들은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외친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건강한 자식들이 여덟이나 있다. 부유한 노부부는 유산을 남길 자식 하나 없이 죽는다. 연인이 있는 아가씨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연인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그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귀찮아한다. 애인도 없고 평범하게 생기고 나이도 많은 스미스 양이나 브라운 양도 있으니 가서 그들하고나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연인이 있는 아가씨들은 정작 연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애초부터 결혼할 심사도 아니다.


운전을 할 때, 돈을 쓸 때, 여행을 할 때 사람의 본성이 가장 정직하게 드러난다고 했던가. 이들은 숨기고 싶은 인간 본성을 여과 없이 다 드러낸다. 어쩌면 그래서 재미있기보다는 다소 불편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숨기고 싶은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땅에서는 매우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들도 보트에만 타면 폭력적이 되고 난폭해진다. 한 번은 매력적인 젊은 숙녀와 함께 잠시 뱃놀이를 간 적이 있다. 그녀의 천성이 사랑스럽고 온유하기 그지없는 여인이었지만, 강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듣고 있기가 침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 강의 공기는 뭐가 나쁜 건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사람의 성질에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내 생각에 사공들이 가끔씩 서로에게 무례하게 굴고, 평온한 순간이 찾아오면 반드시 후회할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여기서 연유한 것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