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수 없는 '자신'과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보고서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 존재는 단연 '사람'일 것이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다르다. 꽃값이 세상 아까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찬값을 아껴서 꽃을 사는 사람도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집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 곳곳에 발자국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여행 갈 때 아침부터 밤까지 완벽한 타임테이블을 만들어서 가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행기표만 예매하는 것으로 여행 준비 끝인 사람도 있다. 집안을 카오스 상태로 만들어 놓고도 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다. 어디 그뿐일까? 이제는 '그'에 대해서 혹은 '나'에 대해서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인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한다.
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은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좋아할 수 없는 자신과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보고서'이다. '성격'이라는 창을 통해서 나를 혹은 그 사람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 책에서는 '성격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에 의해서 결정된다'라고 주장한다. 환경적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격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방황선택’의 결과라고 말한다. 즉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선택하는 진화과정에서 때로는 A라는 성격이, 때로는 B라는 성격이 자연선택되고, 이런 진화 모델이 부단히 되풀이되면서 유전적 차이를 야기하고, 이것이 복잡 다단한 성격을 낳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또 우리 각자의 관심사, 경력, 인간관계,
사랑 그리고 건강과 관련된 많은 일들은
저마다 다른 성격과 관련된 뇌 영역의 구조와
작용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렇게 다른 이유는 첫째 유전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가 통제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어린 시절의 여러 환경적 영향 때문이다.
성격특성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가장 외향적인 십대가
가장 외향적인 성인이 된다.
그러나 성격수치상 개인 간의 서열은
대체로 유지되면서도, 전체적인 분포는
나이에 따라 다소 변한다. 대체로 성인이 될수록 친화성과 성실성은 높아지고
외향성, 개방성, 신경성은 낮아진다.
기본적인 성격을 바꿀 필요는 없다.
그 성격을 표현하는 행동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5대 성격특성 모델'을 기반으로 성격을 설명한다. 이 모델의 기본 개념은 인간의 성격은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라는 다섯 가지 특성으로 결정되며, 모든 사람은 이 다섯 가지로 성격 점수를 매길 수 있고, 이 점수를 알면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5대 성격특성 모델
외향성(Extraversion)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 있다. 외향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사교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말이 더 많으며, 파티를 더 좋아하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한다. 외향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긍정적인 감정시스템의 반응성이 적고, 사교 성공 칭찬 등에서 얻는 심리적 혜택도 적다.
주요 심리: 보상에 대한 반응
혜택(장점): 높은 보상 추구와 획득
비용(단점): 육체적 위험, 불안정한 가족관계
신경성(Neuroticism)
신경성은 부정적인 감정과 관련 있다.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부정적인 감정이 화재경보기와 같은 것이라면 신경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센서를 아주 민감하게 조절해 놓은 화재경보기와 같다.
주요 심리: 위협에 대한 반응
혜택(장점): 경계, 노력
비용(단점): 근심, 우울증
성실성(Conscientiousness)
충동 통제와 관련된 성격이다.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절제력이 있고, 체계적이고, 자신을 통제하는 반면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이며 의지가 약하다. 성실성 수치가 매우 낮다는 것은 어떤 일이 피해를 준다 해도 그 일을 멈출 수 없는 중독 성격임을 의미한다.
주요 심리: 충동 억제 반응
혜택(장점): 계획, 절제
비용(단점): 경직성, 순발력 부족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독창적이고 예술적이다. 개방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예술적인 일이나 부정을 폭로하는 일을 하는 경향이 많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전통적인 제도와 직업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개방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보다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를 더 잘 푼다.
주요 심리: 정신적 연상의 광대함
혜택(장점): 예술적 감수성, 확산된 사고
비용(단점): 이상한 믿음, 정신병에 취약
친화성(Agreeableness)
친화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협조적이고 사람을 잘 믿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반면, 친화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차갑고 적대적이며 온순하지 않다. 친화성 수치가 높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 상태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강하고, 이를 행동에 옮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심리: 타인에 대한 존중
혜택(장점): 조화로운 사회관계
비용(단점): 자아를 앞세우지 못함.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회득하지 못함
5대 성격 특성에는 장단점이 있다. 본질적으로 더 좋은 성격, 나쁜 성격은 없다. 모든 성격에는 혜택과 비용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서 신경증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걱정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살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이른바 화재경보기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 화재경보기는 불이 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화재경보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오작동될 수 있다. 불이 나지 않았는데도 경보가 울릴 수 있으며(거짓 양성반응), 불이 났는데도 경보가 울리지 않을 수 있다(거짓 음성반응). 거짓 양성 반응의 결가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지만, 거짓 음성반응의 결과는 치명적이다. 따라서 화재경보기 센서를 조절할 때, 이따금 잘못된 경보를 울리는 한이 있어도 불이 나면 '항상' 경보가 울리도록 센서의 화재감지 수준을 민감하게 설정해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산악인의 신경성 수치는 일반인보다 훨씬 낮았다고 한다. 외향성 수치는 높았고.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신경성 수치가 낮은 사람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등반가들의 용기를 칭찬할 수는 있겠지만, 이들은 신경성 수치가 낮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다분히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성격은 못 바꿔! 아니 안 바뀌어!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다녔던 질문은 "그래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거야?"였다. 결론에서 저자는 말한다. 근본적인 성격은 바꿀 수 없다고. 그러니 성격을 바꾸려고 애쓸 필요 없다고. 더 좋은 성격이 있으면 바꿔야겠지만, 왜냐하면 인류사를 통틀어 언제나 가장 좋은 성격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성격에는 장점(혜택)과 단점(비용)이 있기 때문에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면 그것으로 충분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자신의 성격을 표현하는 행동과 자신의 삶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성실성이 낮은 알코올중독자가 과거에 과도하게 음주를 한 것이 성격에 순방향으로 움직이는 행동을 택한 것이라면, 금주를 하는 것은 자신의 성격을 역방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역방향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뇌를 억지로 써야 하기 때문에 몹시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성공 보장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행동을 바꾼다면 삶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