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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Jul 17. 2023

가지치기의 기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배우다 2

수년 전 같이 일했던 후배가 일명 나의 뒷담을 했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별것도 아닌데, 무심히 흘려버리면 될 일인데, 생각이 가지를 뻗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내 기억 속에는 그런 일이 없는데... 내가 당한 입장이 아니어서 기억을 못 하는 건가? 나름 챙겨준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나는 그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일을 해야 하는데 불쑥 치고 나오는 생각의 가지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기분이 가라앉으려고 했다. 생각의 가지치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성장기 나무는 무섭게 가지를 뻗아간다. 아직 뿌리를 깊이 내리지도 못했을 텐데, 나무도 욕심이 앞서는지 가지부터 뻗는다. 주인이 그 욕심을 잘라주지 않으면 열매가 여름의 태풍과 땡볕을 견디지 못한 채 여물기도 전에 떨어진다. 무사히 버틴다 해도 제대로 단물이 들지 않거나 크게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참다래 묘목을 심어 가꾸기 시작했던 아버지는 어느 해 가지치기를 하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농협 작목반 직원이 나와서 가지치기 시범을 보여주더구나. "제가 어르신에게 욕먹을 각오하고 딱 한 그루만 가지치기하겠습니다." 교육을 위해서 나온 사람인데 욕할 일이 뭐 있을까 싶었지. 그런데 가지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는 했다. 당장이라도 전지가위를 빼앗고 그 사람 엉덩이를 걷어차서 쫓아내고 싶었다. 애지중지 키운 나무의 가지를 싹둑 잘라내는데, 내 팔이 하나 잘려나가는 기분이었다. 괜히 가위를 넘겨줘서 아까운 가지를 잘라냈다고  몇 날 며칠 후회를 하며 속앓이를 했었다. 그런데 그 해 가을 수확을 할 때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가지는 그렇게 쳐야 한다는 것을. 그 해 가장 크고 튼실한 열매를 맺은 나무는 작목반 직원이 가지치기 한 바로 그 나무였다. 과감하게 가지를 쳐내고 욕심을 줄인 덕분에 크고 달콤한 열매를 맺었지.




애써 기운 나무가 아까워서 가지를 자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당도가 떨어지는 작은 열매뿐이다. 마음대로 뻗어가는 생각의 가지도 마찬가지이다. 잘라주지 않으면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길 수도 있다. 뻔히 보이는 나쁜 결과를 막고 싶다면, 전지가위를 들고 뻗어가는 생각의 나뭇가지를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뚝 잘라냈다.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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