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래 수확을 막 끝낸 어느 해였습니다. 아버지는 빈 몸으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말했습니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때는 힘겨워 보이더니, 이제야 홀가분해 보이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다래나무에서 당신을 보고 계신 것이 아닐까?' 그날부터 아버지의 농사일에 좀 더 관심을 가졌습니 다. 아버지 어머니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찾아뵙는 것이 고작이니 열심히 보고 들어도 단면을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단면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습니다.
아버지의 다래가 유난히 맛있는 것은 땀과 정성 덕분이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과수원을 넘나들며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가지를 쳤습니다. 일은 끝이 없었습니다.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엄마의 텃밭에는 온갖 종류의 채소와 과일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잘 익은 수박과 참외를 먹을 줄만 알았지 수박꽃과 참외꽃을 자세히 본 적은 없었습니다. 들깨와 참깨, 고추와 콩, 또 무화과도 제 나름의 방식대로 꽃을 피운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뿌리를 보기 전에는 생강을 알아보지 못했고, 열매를 보기 전에는 결명자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와 내 딸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과정이 없고 결실만 있습니다. 마트에 가면 갖가지 과일과 채소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으니 사다 먹으면 그뿐입니다. 그렇게 결실만 누려왔기 때문에 매사에 조급하고,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연에서 배운 삶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내 딸과 그의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지나친 사랑은 독
나무는 추위를 견디며 안으로 강해진다.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으로 이듬해 가을을 준비하지. 농부는 그런 나무를 응원하며 볏짚으로 몸을 감싸주고 거름을 주지. 과수원을 시작했던 초기 어느 해에 나무에 거름을 듬뿍 주었다. 어린 나무를 빨리 키워서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싶었거든. 거름을 몇 트럭씩 사다가 양껏 뿌렸지. 이듬해 나무는 거름을 감당하지 못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구나. 그때서야 깨달았다. 사랑도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을. 지나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독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