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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Jul 03. 2023

변화를 허하라

갱년기와 사춘기의 격돌 4

언젠가 친구 집에 갔더니 작은 반찬통에 가득 든 어묵볶음을 맥주 안주로 내놨다. 

"뭐야?"

"엄마가 나 좋아한다고 가져다주셨어."

"어묵볶음 좋아해?"

"좋아했지. 30년 전에"

그 아이는 이미 오래전에 어른이 됐고, 그 사이 입맛도 많이 달라졌는데 부모는 기억 속에 아이는 늘 아이다. 


그 옛날, 젖꼭지 대신 빨대로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됐을 때 '장하다'라고 환호의 박수를 보내줬던 내 아이는

어느 날 훌쩍 자라서 커피의 세계에 입문했다. 입문 초기에는 쓴 커피가 싫다며 캐러멜 마키야토만 찾더니 이제는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해 마시며 졸음을 쫓는다. 김치를 먹지 못해서 물에 씻어줘야 했던 아이는 이제 매운 마라탕을 좋아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햄버거에 콜라를 마시던 아이가 이제는 치킨에 맥주를 마신다. 내 기억 속의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꽃아 마시며 활짝 웃고 있지만, 현실의 아이는 내가 끓여준 해장국을 먹으며 헤벌쭉 웃고 있다. 한 때 나는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였지만, 이제 나는 아이에게 너무 좁고 작은 세상이다. 엄마는 더 이상 아이의 즐거운 놀이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집을 피운다. 바깥세상에는 위험한 것들이 너무 많으니 내가 만들어 둔 안전한 놀이터에서 놀라고...


세상은 넓고 재미있는 것은 너무 많고, 맛있는 것도 멋진 사람도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아이는 더 이상 엄마가 만들어준 세상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한다. '넘어질지도 모르는데... 상처 입을지도 모르는데...' 걱정으로 애가 타고 잠이 안 온다. 아이에게 엄마의 걱정은 노파심이고 구속이다. 엄마의 걱정을 노파심으로 느끼고, 엄마의 사랑을 구속으로 느끼는 것은 자녀의 잘못이 아니다. 물러서야 할 시점에 물러서지 못한 엄마의 탓이다.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내 마음속의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어느새 어른이 된 딸의 날개를 꺾으려고 하지 말자. 딸의 변화를 허하자.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딸을 위해 엄마가 해야 하는 것은 '걱정'이 아니라 믿어주는 것이다. 한 발 물러서서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말해주자.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맛있는 밥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달려와. 엄마는 늘 네 편이고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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