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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문 Jul 01. 2023

왜 했던 말을 또 할까?

갱년기와 사춘기의 격돌 3

한 때 진심으로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왜 어른들은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는 것일까?' 지난번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를 이번 술자리에서 또 하고, 아침에 했던 이야기를 오후에 또 하고, 심지어 한 자리에서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시간이 그 답을 알려주었다.


친구와 후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저녁 겸 술을 한 잔 하던 어느 날, 대화 도중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혹시, 내가 이 말을 했었어?"

친구와 후배 4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지?' 하는 당혹스러운 표정 둘, '선배도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구나'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 하나 그리고 '이젠 너마저...'라는 배신감이 어린 표정 하나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깨달았다. 어른들이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던 이유를. 이미 말했다는 것을 깜빡하기 때문이었다.  

 

갱년기가 되면 쉽게 깜빡한다. 차를 가지고 마트에 갔다가 차를 깜빡하고 올 때는 택시를 타고 오기도 하고, 운전용 단화로 바꿔 신으면서 하이힐 챙기는 것을 깜빡해서 주차장에 하이힐을 덩그러니 남겨두기도 하고, 가스레인지 위에 곰국을 올려놓고 깜빡해서 홀라당 태워먹기도 하고, 이미 말했다는 것을 깜빡해서 같은 말을 하고 또 한다. 직장상사가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지겨워도 들어준다. 심지어 처음 듣는 것처럼 적극적인 리액션도 해준다. 직급이 깡패니까.   


하지만 집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엄마가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대번에 뾰족한 반응이 돌아온다.

"아, 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총기 반짝이는 사춘기에는 같은 말 두 번이 지겹지만, 깜빡깜빡하는 갱년기에는 같은 말 두 번 세 번 정도는 처음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잔소리도 하는 것이라고 해서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갱년기가 되고 보니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다. 깜빡임이라는 씁쓸하면서도 서글픈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사춘기 아이들은 엄마 말을 귓등으로 듣는 신공을 발휘하니 최소한 서너 번은 반복해야만 제대로 듣고 마음에 새길 것 같아서 몇 번씩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착각이다. 반복되는 지겨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반복되는 잔소리는 갱년기의 깜빡임과 사춘기의 귓등 신공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썩 유쾌하지 이 합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갱년기 핑계 그만 대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메모도 하자. 나이 들어도 기억력은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고 하니까.  그리고 사춘기 아해들아 "사람이 말을 하면 제발 좀 잘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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