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17
지하철 역 계단, 작은 체구의 두 여성이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내려가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한쪽 어깨에는 에코백을 메고 있었고 손에는 우산까지 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커다란 여행가방을 계단으로 끌어내리는 모습은 몹시도 힘들어 보이고 위험해 보였다. 겨우 지하철역 초입이라 내려갈 계단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앞서가던 중년의 남성도 딸 생각이 나는지 몇 번씩 뒤돌아 보았다. 도와달라고 말만 하면 당장이라고 달려가서 손을 빌려줄 것 같았지만, 두 여성은 끝내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남성은 그냥 발길을 돌렸다. 나 역시 몇 계단을 내려가다가 돌아보고, 몇 계단을 내려가다가 또 돌아보다가 되돌아가서 물었다.
"같이 들어드릴까요?"
그런데 두 사람은 격하게 손을 흔들며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 일본 여행자였던 모양이다.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나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의사를 이해하기는 충분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가방을 같이 들어주겠다는 몸짓을 했고, 그들은 양손을 흔들어 대며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재차 두 사람과 시선을 맞추며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손을 가로저었다. 결국 나도 앞서 갔던 중년의 남성처럼 발길을 돌렸다.
얼마 전 친구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승객들로 붐비는 버스 안. 한 여학생이 무거워 보이는 가방과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고, 마침 좌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물었다고 한다.
"가방 받아줄까요?"
돌아온 대답은 NO였다고 한다. [응답하라 1988] 시절만 하더라도 비좁은 버스에서 앉아 있는 사람은 서 있는 사람들의 가방을 받아주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여러 사람의 가방을 받아주다 보면 무릎에 곰 한 마리가 올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더 이상 가방을 받아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된다. '혼자서도 잘하라'라고 아이들을 키운 탓일까?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 물론 노력해보지도 않고 도와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일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은 안 되겠지만,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는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지혜이고 용기이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다. 민폐를 끼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청하지 않아서 사고를 치는 것이 민폐이다. 가방이 무거워 혼자 선반에 올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도움을 거절하고 억지로 올리려다가 가방을 떨어뜨려 밑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다치게 만드는 것이 진짜 민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는 '도움을 청하는 것'도 포함된다. 혼자 들 수 없는 바위를 치워야 한다면 힘센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혼자 수영을 익힐 수가 없다면 잘하는 사람에게 가르쳐달라고 청해야 한다. 도와달라고 했는데 '외면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 없다. 해외여행 갔다가 길을 물어봤을 때 거절당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심지어 몇 십분 동안 나와 동행하며 길을 찾아준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남을 돕고 싶어 한다.
손이 두 개인 이유는
한 손은 자신을 돕고, 다른 한 손은 남을 도우라는 뜻이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 오드리 헵번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