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나를 가르쳤습니다"

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 18

by 효문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흔히 하는 생각 하나 '그 말은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걸'이다. 며칠 전 모임을 끝내고 돌아올 때 나는 또 그 생각을 했다. 반백 년을 살아왔으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그만할 때도 되었을 텐데, 습관이 참 무섭다.


사람의 입은 하나뿐이다. 그 입으로 말도 해야 하고, 음식도 먹어야 한다. 하나로 두 가지 일을 해야 하니 말하는 것도 먹는 것도 조금씩 줄여야 할 터인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반대일 때가 많다. 더 부지런히 입을 놀린다. 반면 귀는 두 개나 된다. 해야 하는 일은 듣는 것 하나뿐이다. 게다가 눈꺼풀처럼 귀꺼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평생토록 열려 있다. 덕분에 많은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말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말을 줄여야 한다.


나의 귀가 나를 가르쳤습니다


그 유명한 칭기즈칸의 말이다. 사고무친에 일자무식이었던 테무친이 몽골 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으로 추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귀'였다고 한다.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던 그는 참모는 물론 잡혀온 포로들의 이야기까지 귀 기울여 들으며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입을 닫고 대신 귀를 열었던 것이다. 제왕이 이렇게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부하직원이나 나이 어린 사람은 몇 시간씩 고문당하듯이 이야기를 듣는 풍경이 흔하지 않은가.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서 지구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세상이어서 나의 안목이 넓은 것 같지만, 아니다. 내 관심사에 미치는 범위에 한정된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이른 아침, 딸아이 방에서 한참 전부터 알람이 울리고 있지만 꺼지지 않는다. 듣지 못하고 자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문을 열고 "딸, 일어나야지" 하면 딸은 귀신같이 내 목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 이것도 '칵테일파티 효과'일까? 시끄러운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혹은 시끄러운 길거리에서 동전이 떨어지면 그 소리가 신기하게도 귀에 쏙 들어오는 것처럼, 여러 사람의 목소리와 잡음이 혼재하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흥미를 갖는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듣는 현상이 '칵테일파티 효과'이다. 내가 관심 갖는 특정 소리가 내 귀를 사로잡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내가 접하는 정보를 들 역시 내가 관심 갖는 특정 정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정으로 세상을 넓게 보고 많은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올해 1월부터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독서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갖고 있다. 나이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다. 당연히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역시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다를 것이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음악도 만나고, 광고나 브랜드, 액세서리 공예도 만나고, 내가 다니던 시절의 학교가 아닌 요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만난다. 닫혀 있었던 수많은 세계의 문이 하나씩 열린다.

그런데 듣는 일은 의외로 많은 주의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머릿속으로 잠깐 딴생각이 지나가면 말을 흐름을 놓치게 된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와서 그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가만히 더듬어 보면 대략의 이야기만 기억날 뿐,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우리 두뇌는 그렇게 구멍 난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구멍을 메운다. 오해가 생기고 잘못된 정보가 양산되는 순간이다.


공자는 육십을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래저래 따지고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오롯이 듣는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칸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입은 닫고 귀는 여는 어른'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세상도 너의 세상도 더 넓어졌으면 좋겠고 그 속에서 수많은 재미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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