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보내지 못한 편지

by 아무나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해서 누군가 앞에 서면 그 사람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지 못한다

밖으로 나와야 할 말이 자꾸 입 안에 말이 맴돌기만 해서

자꾸 횡설수설하고 그러다 당황하여 붉어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어버린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빨리 아무 화제로나 넘어가 버린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터벅터벅 돌아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구부리고 구부리다가 작은 공처럼 작아져 버린다


하고 싶은데 다 하지 못한 말이 그 안에서 자꾸 맴돈다

다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그 상황이 되면


하지만 그 상황은 이미 지났고 나는 그렇게 말을 잃은 채 혼자 동그마니 누워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진짜 해야 될 말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펜을 들고 내가 진짜 하려던 말을 한다

그 말은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한다



누구에게...



그 편지는 하염없이 길어지고 길어져서 몇 장이 넘어갔는데도

나는 아직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아서 차마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몇 시간이 나도 모르게 흐르고 나면 시큰해진 손목에 펜을 놓는다

그리고 그 편지 뭉치가 된 편지를 가지런히 삼등분을 하여 본다

하지만 그 편지는 너무 두꺼워서 봉투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구겨 넣은 봉투는 부풀고 구겨져 볼품이 없다


나는 다시 편지를 봉투에서 꺼내 놓는다

답답했던지 잔뜩 웅크렸던 편지가 혼자서 펴진다

하지만 다 펴지지도 않고 애매하게 그렇게 구부러진 채 내 책상에 그대로 놓여 있다

애매하게 구부러진 편지는 마치 애매하게 다 말하지 못한 내 말처럼

침대 위에 구부리다 공처럼 작아져 버린 내 몸처럼

그렇게 덩그러니 있다


나는 그 편지를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는 정신없이 쓴 내 편지를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어본다

혹여나 틀린 글자가 전해질까 봐


하지만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이 너무 많은 말들이 과하게만 느껴진다

그 사람이 갑자기 이 편지를 받게 되면 마주칠 말의 홍수를


나는 본다


나는 그 사람이 내 말의 홍수 속에 휩쓸려 가는 것을 본다

그 사람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 사람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이렇게까지 내가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을 몰라서

이 쏟아지는 이야기들이 혼란스럽다.


한꺼번에 알기에는 너무 많은 정보들

이만큼까지 알고 싶지 않았는데 편지는 너무 일방적이며

듣고 흘릴 수도 없도록 활자로 고정되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눈에 들어와 박힌다


부담스러운 말들

답변할 수 없는 말들

그것이 몇 장이나 쌓이면

그 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하는 대답에 자신이 없어진다


그 사람이 편지를 내려놓는다

미처 다 오므라들지 못한 편지가 덩그러니 놓인다

그 사람의 책상이든 혹은 책상 옆의 쓰레기통이든


나는 아직 보내지 않은 편지를 말아 쥔다

다시 펴본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귀퉁이를 잡고 두 손을 반대편으로 당긴다

없던 것으로 하려고


하지만 너무 두꺼워진 편지는 찢어지지 않고

내 손 끝은 아프고

편지엔 아프게 구겨진 자국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서랍을 연다.

그리고 그곳에 아프게 구겨진 편지를 넣는다

그 안에는 이미 그와 같은 보내지 못한 편지들이 가득하다


쌓여있는 말들을 탁 눌러 닫는다


듣지 못한 사람 앞에서 하지 못한 말을 다 하고 난 나는

눈을 비비고 글을 쓰느라 오랫동안 숙이고 있던 몸을 펴려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다행히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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