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 Oct 17. 2021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

나무늘보, 대치동에 입성하다

고백할 일이 있다. 사실 지금 나무늘보는 대치동 꼴찌가 아니다. 다만 대치동에 입성하기 전, 그러니까 초등학교 시절에는 꼴찌에 준하는 성적을 자랑했다. 나무늘보 스스로가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하니 말이다. 


“선생님, 저 꼴찌는 아니죠?”


나무늘보의 초등학교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았던 것 일정 부분 나에게 책임이 있다. ‘깨어있는’ 부모답게 아이는 뛰어 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으로 등 떠미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길 원했고, 덕분에 맘껏 놀다가 취학을 하게 된 아이는 한글도 떼지 못한 채 입학식을 맞았다. 


그러나 잘 노는 아이가 ‘무조건’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다는 건 지극히 교과서적인 이야기였다. 한글을 모르고 학교에 간 나무늘보는 왕따를 당했다. 공부를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원인을 몰랐던 나는 계속 나무늘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고, 결국 보다 못한 담임선생님께서 학원을 보내기를 권유하셨다. 이후 아이는 학원에 다녔고 하나 둘 친구가 생겼다. 공교육이 모든 걸 책임져준다는 얄팍한 믿음이 깨진 첫 사건이었다.


나무늘보가 대치동에 첫 발을 들이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직장 문제로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이사가 결정되며, 여전히 꼴찌력을 자랑하는 아이가 걱정됐다. 과연, 나무늘보가, 대치동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겁부터 집어먹은 나는 나무늘보를 설득했다. 아무래도 공부는 힘들 것 같으니 그림을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미대 역시 뛰어난 성적을 필요로 하지만 그림만 잘 파면 중하위권 대학 정도는 꿈꿔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나무늘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길로 나는 예중 입시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어떻게 해서든 무서운 입시시장을 비껴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목표로 한 예중은 대치동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나는 아이가 예술 세계에 빠져 행복한 인생을 살기 바랐다. 누구나 다 공부를 잘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이 나의 두 번 째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시는 예술 대신 기술을 필요로 했고, 기술은 철저한 훈련을 위해 습득되는 거였다. 화실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아이에게 그림을 가르쳤고 매일 같이 시험을 봤다. 정해진 시간 내에 제대로 된 그림을 뽑아내지 않으면 아이에게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찢게 하고는 “넌 방금 네 자식을 찢어 버린 거야.”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쏟아냈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는 사이 입시가 다가왔고, 우회로로 생각했던 예중 시험에서 당연하게 낙방했다. 돌이켜보면 예술 계통의 입시를 안이하게 생각해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결과만 보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었다. 이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뎌 낸 나무늘보가 드디어 입을 떼었기 때문이다. 


“나 차라리 국영수를 할래.”


맙소사. 드디어, 적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무늘보에게서 한줄기 빛을 찾았다. 적어도 이 아이에게 예술적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것이 어디인가. 사지선다가 아닌 백지선다쯤 되는 문항에서 하나의 예시를 지워버린 기분이었다. 그래, 네가 국영수가 좋다면 한 번 도전해보자. 그렇게 나는 대치동 학원가에 발을 들였다. 나무늘보가 중학교의 입학할 때쯤의 일이었다. 


나무늘보는 지금 고등학생이 되어 1학년 첫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다. 그렇게 느즈막이 대치동에 입성해 남들보다 3배속이 느린 걸음으로 가던 아이의 성적은 중간 어디쯤 걸쳐져있다. 꼴찌에서 많이도 올라왔다 대견할 때도 있고, 이 험한 입시바닥에서 얼마나 더 올라가줄지 조마조마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감사한 건 마음이 건강하다는 거다. 이번 시험을 유난히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 아이.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나는 이제껏 잘 따라와 준 아이를 대견해하며,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도 걸어 갈 대치동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누구나 1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1등보다 많은 건 1등 이하부터 꼴찌까지의 아이들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참. 그리고 아이를 나무늘보라고 칭하는 건 대치동 어딘가에 자리 잡은, 문제의 미술학원에서 붙여준 별명에서 기인한다. 그런 별명이 붙게 된 건 잘 훈련된 군인처럼, 입시에 최적화된 이들이 보기에 유달리 전투력 없는 아이가 나무늘보처럼 보였던 탓일 터였다. 어느 쪽도 나쁜 건 없다. 빠른 아이도, 느린 아이도, 각자의 장점은 있는 법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