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의 기쁨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나무늘보의 첫 성적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이 글의 교정을 보는 시점에서 정확한 성적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 문장에 대한 책임을 다 하자고 한다) 다만 허리 어디쯤의 등수였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무늘보의 성적은 중간 그룹에 속해 있었다. 꼴찌그룹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쯤의 나는 쿨내를 버렸다. 꼴찌의 엄마여도 괜찮아, 라는 건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한 허세였음을 깔끔하게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즈음의 나무늘보는 성장기 내내 어느 시절보다 행복하고 활기가 넘쳐 보였다. 학원을 다니며 적당량의 공부를 했던 녀석은 무리와 함께 한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냈다. 이 부분은 유난히 모범생처럼 보이는 나무늘보의 외모에서 기인한 것인데, 인사성 바르고 나름 순진한 녀석의 매너에 친구들이나 선생님 모두 ‘모범생’같다는 인상을 받았고, 자신의 이미지가 호감으로 돌아온 다는 걸 학습한 나무늘보는 진짜 모범생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듯 했다. (녀석은 관종기질이 다분했고 최근에는 그 성향이 절정에 달해 꽃을 피우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거나 아이는, 이제 중간 그룹에 들어왔고, 왕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며 전전긍긍했던 외할머니는 한 시름 놓았다며 아이를 대견해 했다.
물론 모든 과목에 중간에 빛나는 성적을 낸 건 아니었다. 사실 수학을 제외하면 그다지 봐줄 만한 성적표가 아니기는 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사립초등학교에서, 무려 원어민 선생님을 통해 영어를 배웠던 아이의 영어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아이도, 그리고 나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포인트가 하나 있었다. 모든 과목의 점수가 바닥에서부터 시작되니, 시험을 거듭하고 학년을 올라갈수록, 성적 또한 상승곡선말고는 탈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기쁨의 끝이 찾아온 건 얼마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