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공부한 만큼
돌이켜보면 나무늘보는 그 어떤 일에도 재능을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나 더 심각한 건 재능 뿐 아니라 의욕 또한 없었다는 거다. 공부는 그렇다 치고 노는 것에서조차 열정적이지 않았던 나무늘보는 좀처럼 무언가에 몰입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녀석을 ‘학원’이라는 강제적 상황에 던져놓고도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학원에 다닌 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바빴기 때문에, 그동안에도 아이는 종종 학원에 맡겨졌고, 꾸준한 학원비를 쓰고도 아이의 성적은 꼴찌언저리를 잔잔하게 맴돌았다. 그러니 대치동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더군다나 자유학년제 제도 아래 중학교 1학년을 보낸 나무늘보는 달라진 실력을 검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고가의 학원비를 한참이나 쓰고도 드라마틱한 기쁨을 맛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막연한 기대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무늘보의 방에 쌓여가는 문제집 덕분이었다. 언제나 새것처럼 깨끗했던 이제까지의 학습지와 달리, 아이의 문제집은 치열한 연산의 흔적을 남긴 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한 권을 다 풀면 다른 책을 사 달라했고, 그 다음 서점을 방문하는 주기가 오래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내내 단 한권의 학습지도 마무리 해 본적이 없던 아이가, 놀랍게도, 이곳에서, 보름에 한 권씩의 문제집을 해치우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 푼 문제집 옆에는 비록 악필일지언정, 오답을 정리해서 다시 풀어둔 공책이 깨알같이 자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직감했다. 이제 나무늘보가, 인생의 한 장을 새롭게 열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당시 만일 시험이라는 것을 봤다면, 그래서 아이의 성적을 확인했다면, 여전히 나는 꼴찌라는 행성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녀석의 석차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두어 달 공부했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하게 실력을 쌓아온 아이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이에게 의욕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행복으로 직결하는 말이 아니었다. 공부를 성공의 유일한 통로라 가르치는 건 불행한 일이지만 배움을 속물근성으로 치부하는 것 또한 바보 같은 짓임을 그 때 난 깨달았다. 사람은 목표가 있을 때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무늘보는 첫 학원에서 친구를 얻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