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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Oct 17. 2021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_3

생일 축하합니다

친구가 늘자 나무늘보에게는 신기한 욕망이 생겼다. 공부를 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공부 잘하는 아이’처럼 보여 지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정리해보자면, 학습자체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모범생 코스프레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말 타면 고깔 쓰고 싶다더니 옛 말은 그른 게 하나 없었다. 


그러나 이유가 뭐가 됐건 공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건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무늘보는 이름 모를 학원 이름을 대며 친구들이 다니는 곳이라고 소개했고 나는 두 말도 없이 학원비를 입금했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나의 경제력에 대한 부분 말이다. 학원비를 쿨하게 입금했다고 하니 새삼 나의 잔고가 꽤 두독해 보이는 착시는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당시 내가 받아 든 첫 수업료는 68만원이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달치 수강료였다. 가난한 프리랜서인 나에게 68만원이라는 돈은 통장을 쥐어짜도 나오지 않을 돈이었고 결국 묵은 옷장을 털고 수년 전 장만했던 명품을 팔아치우고서야 몇 달치 수업료가 마련되었음을 고백한다. 


어쨌거나 수강료를 납부하기 위해 방문했던 학원은 제법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몰입수학’이라는 네 글자 덕분이었다. 12시간 동안 (어떤 커리큘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의 수학을 완벽하게 잡아주겠다는 수업은 고작 한 달 치 수업료를 쥐고 처음 학원에 방문한 얼뜨기 학부형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대치동이라는 화려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학원은 낡고 작았다. 대치동에 대한 적응이 완료된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비싼 임대료를 충당하며 버텨주는 학원이 대견할 지경이지만, 갓 상경한 구한말의 시골소녀 같은 상태의 나에게는 그 조차도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그렇지만 진짜 스토리는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학원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우정의 눈물’을 쏟아봤기 때문이었다. 신학기를 막 지난 4월의 문턱에 생일을 맞은 아이는, 이제 갓 사귄 친구들에게서 특별한 생일 축하를 받았던 것. 


같은 학교를 다니며 같은 학원을 다닌 세 명의 친구들은, 비 오는 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을 달려 초코파이와 초를 장만했고,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나무늘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초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귀여운 이벤트를 벌였다. 나의 내면 어딘가에 촌스럽게 장착되어 있던 ‘오직 공부를 위해 존재하는’ 아이들을 상상했던 나를 꾸짖어 준 특별한 사건이었다. 이곳에 온 지 5년이 넘었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나에게는 참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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