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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 Oct 17. 2021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_2

왕따만 아니면 괜찮아


덜컥 강남으로 집을 옮기고도 전학은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때 왕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아이를 새로운 학교에 보낼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북에 있는 초등학교로 18개월간 아이를 등학교 시켰다. 그때 나의 관심사는 성적이 아닌 교우관계가 전부였고, 덕분에 나무늘보는 자신이 입학했던 초등학교의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학교였다. 드디어 나무늘보의 ‘진짜’ 강남살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외할머니와 나는 땅이 꺼져라 걱정을 시작했다. ‘무서운’ 강남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느려터진 녀석이 놀림이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외할머니도, 엄마도, 학교를 대신 다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무늘보는 어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 아이는 참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즈음 성장기의 정점을 맞았던 나무늘보는 늘씬하게 살이 빠졌고 키가 훌쩍 컸다. ‘호감형’의 외모로 거듭났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못 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존재로 등극했다. 훤칠하고 낯선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나무늘보의 ‘느린’ 성품은 ‘매력’으로 탈바꿈되어 호감도의 몫을 더했다. 물론 친구들이 드물게 착한 청소년들이었다는 것 또한 운빨의 요소 중 하나였다. 강남 아이들이 공부만 하느라 인성이 메말랐을 거라는 케케묵은 편견을 보란 듯이 박살내며 나무늘보는 강북에 있을 때보다 훨씬 즐거운 학교 생활을 했다. 친구는 나날이 늘었고 아이는 항상 웃었다. 그래, 그걸로 됐다. 그렇게 마음 먹을 즈음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엄마, 나 학원 보내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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