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 Oct 17. 2021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_7

첫 성적표, 낙제와 낙심 사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성적표를 받았다. 제일 잘 본 과목은 5등급. 최저점을 기록한 과목은 7등급이다. 대치동 교육에 발을 담근지 자그마치 6년차인 나는, 오늘도 백치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근데, 등급이 몇 등급까지 있어?”


서른 명이 조금 넘는 한 학급에서 19등의 석차를 받아온 아이의 성적은 아마 ‘중하위권’으로 분류될 터였다. 전국석차에는 차마 눈길이 가지 않았지만 그보다 낮으면 낮았지 높지는 않은 모양새. 그래도 나무늘보는 해맑은 얼굴로 자신의 학급이 딱 평균점을 찍은 반이라며 반에서의 석차가 전교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거라고 했다. 제발, 그 입 다물라. 


그나마 합리화의 지점을 찾으라면 나무늘보가 다니는 학교가 강남권에서도 꽤 치열한 학교라는 점이었다. 전국모의고사로는 2등급 정도의 석차. 흔히 말하는 ‘인서울’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사실 나무늘보와 나는 드물게 낙천적이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 든 오늘, 아이와 나는 고생했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거하게 중국음식을 시켜 먹었다. 돼지고기도 아닌, 자그마치 소고기 탕수육까지 시켜놓고 말이다. 그러나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미인정’ 출석 결과를 뒤늦게 확인한 것이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야 하는 수험생에게 ‘온라인 클래스’라는 복병은, 학교만 가면 당연히 인정되는 출석 점수조차 알토란 같이 빼앗아 갔다. 출석에서 깎여나간 점수에 하마터면 나는 입에서 불을 뿜을 뻔했다. 성적이 안 나오는 건 실력과 운의 콜라보지만 출석점수는 오로지 성실성의 결과물이다.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성실하지조차 못한 나무늘보에게 나는 화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꾹 참았다. 화를 내 봤자 결과에는 오히려 누가 된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주눅이 잘 드는 아이는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곱절의 실수를 한다. 참자, 그래, 내가 참자. 


1학기의 성적표를 2학기의 지도로 삼아 열심히 공부해보자고 아이를 다독였다. 녀석은 유일한 미덕인 ‘끄덕이기’로 엄마 말에 충성을 다짐한다. 국어성적이나 논술실력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달변의 녀석은 자신이 2학기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할지 열심히 각오를 펼쳐 보였다. 나는 또 한 번 속아 본다. 그 편이 행복하다. 나도, 그 친구도. 

이전 06화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_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