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아 Oct 17. 2021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_8

행복해요

외할머니와 나무늘보는 추억이 많다. 불안정한 프리랜서로 일하는 엄마 덕분에 아이는 종종 할머니에게 맡겨졌고 별나기로 서로에게 지지 않는 두 사람은 평범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주고 받으며 시트콤 같은 추억을 만들어가고는 했다. 그러나 강남으로 이사한 뒤, 할머니와 물리적 거리가 떨어진 지금은 얼굴보다 통화로 안부를 챙기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얼마전 "어떻게 지내니?"라는 물음에 나무늘보는 "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할머니."라고 쾌활하게 답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한가롭게 해맑던지, 할머니는 어이가 없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놈아, 무슨 입시생이 행복씩이나 하냐 이 한심한 놈아."


맞다. 사실 나무늘보는 입시생이라고 보기 드물게 매우 느긋하고 한가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종종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는 확실히 초등학생 때보다 훨씬 즐겁고 활기찬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무늘보의 학습량은 초등학교때에 비해 족히 100배 정도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사소한 의문이 생긴다. 성적과 행복은 정비례일까? 아니면 반비례일까?


간단한 답을 구해보자면 아이들의 행복은 '소속감'과 '자신감'에서 온다. 최소한의 공부는 해야 하는 것이 이 동네 아이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나무늘보는 공부를 시작하며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놀면서도 공부했고, 공부하면서도 놀았다.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성적이 늘어가고 있으니 자신감 역시 예전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나무늘보는 또래에서 더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공부를 해나갔고, 친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싸'가 되고 싶은 욕망도 커졌다. 


이쯤에서 누군가가, 그래서 얼마나 성적이 올랐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우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워낙 바닥에서 시작한 성적이니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두루뭉실한 대답에 만족할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건 인정하기에, 성적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는 이 다음을 기약해보고자 한다. 

이전 07화 나무늘보의 대치동 꼴찌 탈출기_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