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와 문과 사이
성적이 낮을 수록 전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이 바닥에 발을 담근지 무려 4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스카이캐슬>의 '쓰앵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의 적성과 성적을 제대로 파악해야 진로를 정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나는 어쩐지 그 선택을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다니던 학원에서 진로 상담을 위한 적성검사 실시가 가능하다는 걸 알려왔고, 당연히 해당 검사는 유료로 진행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향 파악이 어려웠던 아이는 "이과와 문과의 중간 성향"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과에 걸맞는 성적이 아니니 당연히 문과로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지만 학원에서는 단정적인 어투로 내 의견을 잘라냈다.
"어머님, 문과 나와서 뭐 해먹고 살라구요?"
이 동네에 입성하고 한참 뒤에야 파악한 바로, 대치동 부모들의 대부분은 자녀의 의대 진학을 희망했다. 아직까지도 철이 덜 든 나는 여전히 이 대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는 매우 힘든 직업이기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너무 가혹한 직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이과에 편중된 선택 또한 마찬가지다. 저 많은 아이들이 과연, 전부 이과 진학을 원하는 걸까? 한편 이런 의문도 들었다. 문과 지망생은 과연 루저인가, 하는. 물론 이 모든 선택의 근거는 직업이다. 문과 졸업생은 상대적으로 취업이 힘든 현실이 반영된 것.
어쨌거나 이후 학원에서는 (나만 모르고 이미 이 동네의 모든 학부형이 알고 있던) 입시 전략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생활기록부에 기재가 금지 되어 '쓸모가 없어져 버린' 수상실적이나 독서기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은 선택과목을 어떻게 정해야 진로에 유리한지 같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상담을 마친 나는, 못 들을 걸 들은 기분이 되어 학원을 빠져나왔다. 학원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모르고 있던 현실을 들여다 봐야 하는 상황에서 온 감정이었다. 인정해야 했다. 입시는 불공평한 싸움이었고, 원하건 원치 않건 한 번은 치러야 하는 싸움이었다. 운이 나쁘다면, 두 세번은 링에 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