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여년에 걸쳐 이루어진 엄마의 소원

십 대와의 동거

by 영웅

"누나 바보야? 그게 아니라 이거잖아"

"야! 이 멍청이야! 그래서 뭐!"


잘 노는가 싶더니 그새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김서안!"

멍청이라는 소리가 내 귀를 찌르고 나는 첫째의 이름을 부른다.


"엄마는! 엄마는 왜 나만 머라고 해? 김서율도 나보고 그랬잖아"

"김서안, 너 동생한테 그렇게 나쁜 말 할래?"

"김서율이 나보고 먼저 그랬는데! 먼저 바보라고 했단 말이야! 왜 나만 뭐라고 그래? 왜 차별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날도 그 순간도 그랬다.


왜 내 귀에는 동생이 누나에게 하는 '바보야?'라는 말보다

누나가 동생에게 하는 '멍청이야!'라는 말이 더 크게 들렸을까.


"엄마는 맨날 나만 차별해! 왜 차별해?"

"맞아. 엄마 누나만 차별해. 나도 봤어. 나도 들었어"

고단새 둘째까지 누나 편이 되어 역적을 든다.

"엄마가 뭘?"

"나도 바보라고 누나한테 말했는데 누나만 혼냈잖아"


다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많은 말들이 나열되었는데 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사이 어떤 말 하나가 뉴런을 스쳐 재빠르게 튀어나갔다.

나도 첫째이면서 나도 누나이면서 내가 제일 듣기 싫었던 그 말,

남매를 키우며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했던 그 말,


"네가 누나니까! 누나니까 이해해야지. 모범을 보여야지"


나의 십 대 시절 엄마에게서 받은 많은 사랑과 그 사랑만큼 나를 삼킨 잔소리들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 이상해' 했던 그 모든 말과 행동들

하나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차례대로 내뱉고 있다.


'우리 엄마 이상해' '나는 절대 엄마처럼 안 할 거야'를 대물림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 말을 들은 첫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누나는 왜 이해해야 되는데?"

내 흔들리는 동공을 절대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고 얼른 답한다.

"나이가 많으니까, 더 살았으니까. 좀 더 어린 사람을 품어줄 줄도 알아야지"

"그런데 엄마는 나보다 몇십 년을 더 살아놓고 왜 나를 이해 못 해?"


'그야, 너 낳고 너 키우면서 다시 초등학교 5학년이 됐으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게 말이야!"

인정해 버렸다.




외출 준비도 어찌나 느릿느릿하시는지 '빨리 좀 해줄래?' 라며 수십 번은 말한 것 같은데 만화책을 쥐고 앉아있다 겨우겨우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는 머리 빗기와 화장실 가기가 한번 더 남았다고 한다.


기다린 건 나인데 뭐가 그렇게 심통이 나는지 콩콩 소리를 내대며 신발을 신고

소매가 들어간 것 같아 빼주려고 해도 팔을 들어 대며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잘 다녀와!"

집 근처 도서관 수업이 있는 날이다. 좋아하는 미술 수업 뒤도 안 돌아보고 인사도 해주지 않고 가버린다.

저 얄미운 뒷모습.


그 얄미운 뒷모습을 뒤로하고 가을이 제법 물들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아래로 찬 기운이 도는 토요일 한낮에 마흔이 다되어가는 딸을 둔 엄마와 어느 카페의 창가에 앉아 주문이 밀려 한참을 기다려야 되는 커피를 기다리며 위안을 얻는다.


"학습지 그거 하나 시켜줘 놓고 그거 안 한다고 얼마나 혼냈는지.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때는 참 그게 불안하고 자는 애 깨워서 다 하고 자라 혼내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내가 왜 그랬나 싶다. 그럴 필요 하나도 없었는데"

"그때는 엄마도 그게 최선이었겠지"

엄마의 고해성사에 마흔 되는 딸은 말한다.


"티브이에 금쪽이 이런 거 가끔 보면 너네 키울 때 생각난다. 한 번씩 미안해서 눈물이 나더라 그거 보다가"

"푸핫, 엄마는 우리 잘 키웠지. 나도 우리 서안이 서율이가 엄마 딸 아들처럼만 컸으면 좋겠네"


십 대의 딸은 나는 엄마처럼 절대 안 될 거야. 엄마 이상해.라고 반박했지만

십 대를 키우는 딸은 엄마를 인정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게 맞는 줄 알았던 그때는 틀렸고

내가 하는 모든 게 틀린 것 같은 지금은 맞았다


"너 같은 딸 한번 키워서 낳아봐라! 그럼 내 마음 알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았던 십 대의 어느 날 엄마에게 들었던 그 말

'나는 내 같은 딸 낳으면 절대 엄마처럼 혼도 안 내고 이쁜 것 좋은 것 다 사주고 키울 거다!'

라고 속으로 쾌제를 불렀던 그때의 나

'나는 결혼안할껀데?' 라고 했던 그때의 나


나를 똑 닮은 딸을 낳는 나는

나를 똑 닮은 말대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삐짐이 난무하는 딸에게

'너도 커서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봐야 내 마음 알지! 제발 꼭 낳아봐라'

하며 그때의 엄마의 바람까지 고스란히 대물림하여 내뱉으며 온전히 이해한다.

엄마의 바람이 삼십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같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엄마를,

회초리를 들고는 잠든 내 이마를 밤새 쓸었을 엄마를,

어리고 어리석은 딸이 내뱉은 아무 말에 상처받아 상실감에 휩쓸렸을 엄마를,


삼십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엄마의 바람대로

딸은 엄마를 인정했다.


나도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니, 나도 인정받을 수 있는 엄마일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