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와의 동거
"요고 이쁘네 요고 먹어, 그건 엄마가 먹을게."
"엄마 왜 못생긴 건 항상 엄마가 먹어?"
"너네는 이쁜 것만 먹으라고"
이쁜 것만 먹고 자란 딸이
못난 것 먼저 골라 먹을 때
이쁜 것만 주고 싶은 이가 생겼을 때
그것을 궁금해할 만큼 그 이가 자랐을 때
못난 것만 골라먹는 나란히 앉은 시간들이 결코 못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쁜 것을 쥐어주고 못난 것을 자신의 입에 넣던
그 시절의 나의 엄마도 결코 못나지 않았겠다 싶었다.
너희들도 언젠가 못난 거 먼저 쥐는 기쁜 날이 오기를.
같은 문제를 고치고 고쳐도 세 번 이상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문제의 본질부터 다시 쳐다볼 필요가 있다. 엉뚱한 식을 세워놓고 계속해서 오답만 내는 것 일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돌아가지 않은 채 중간부터 아무리 고치고 고쳐도 시간과 낙담만 늘어날 뿐 결국 오답만 계속해서 도출할 뿐이다.
아이와 나의 관계도 어쩌면 수학문제 같은 것일까.
수학문제에는 더하기 빼기처럼 날이 지나면 자연히 익히는 문제와 미적분, 함수처럼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아이와 나는 어떤 문제를 풀고 있을까.
그날 그 밤도 그랬다.
"서율이 한테는 안 그러잖아. 엄마는 서율이가 이렇게 했으면 안 그랬을 거잖아" 눈물과 분노를 하염없이 흘려대며 그날 늦은 밤 안방 문 앞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큰 아이에게
"서율이는 너처럼 그렇게 안 하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매번 이 문제를 '서율이는 너처럼 안 하니까'로 풀었다.
공경심 없는 말투, 본인이 더 쥐고 있는 패는 당연한 채 동생이, 동생은, 이라는 그 말을 내뱉는 첫째에게 언제나 나의 답은 그랬다.
엉엉 우는 아이를 침묵으로 덮고 잠을 청하게 했다.
12시가 넘은 밤 토요일이라 실컷 늦잠을 청하는 것까진 좋다마는 이제는 좀 자야지 않나 싶은데 또 눈을 발갛게 비비면서 만들기를 한다는 둥 더 놀 궁리를 하는 첫째에게
"이제 그만 자! 오늘 종일 그렇게 재밌게 놀았으면 엄마가 지금 쯤 끊고 자라고 하는 말은 들어야 되는 거야. 그것도 엄마로서 너에게 해야 되는 것들이다!"
"피, 다른 해줘야 될 것도 안 해주면서"
그 말을 내뱉고 발을 콩콩 거리며 돌아서서 가는 첫째의 이름을 불렀다.
"너 이리 와봐, 너 이리 와서 똑바로 말해봐 엄마가 너에게 뭘 해줘야 될걸 안 해주는데?"
첫째는 돌아와 머뭇거린다.
"너 얼른 대답해! 엄마가 뭐 안 해줬는데!?"
"마라탕, 엄마는 마라탕 안 사주잖아"
"마라탕?"
어이가 없어 한번 더 되물었다.
"마라탕?, 마라탕 안 해줬다고 10년을 넘게 너를 키워준 엄마한테 해준 것 없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몇 년 전부터 마라탕 먹고 싶다고 했는데 안 해줬잖아"
"지난주에 너 생일파티에 해준 마라탕은 뭐야? 그럼?"
"그건 내 생일파티니까 엄마는 내 생일에만 마라탕 주잖아"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의 모습을 한채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의 앞에 섰다.
"너 이제껏 엄마가 해준 그 많은 음식들과 끼니들은 안중에도 없고 그 마라탕 때문에 이 밤에 엄마한테 아무것도 해준 것 없다고 말하는 거야? 단지 엄마가 늦었으니 자라고 하는 이유로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야? 엄마 진짜 실망이고 화난다. 더 이상 말하기 싫으니까 가서 자!"
첫째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동화하나를 태블릿 PC로 틀어 잠자리에 눕는다.
안방에 누워 여전히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 나는 20여분 쯤 뒤 아이들 방으로 가 동화를 끄고 태블릿 PC를 가져왔다.
첫째가 쪼르르 따라 나온다.
"나 동화 들을 거야! 다시 틀어줘!"
"너 지금 새벽 1시 넘었어! 얼른 자!"
"나 동화 들으면서 잘 꺼야 얼른 다시 줘!"
"그래, 가져가 가져가서 밤새 듣고 그렇게 해!"
"아 됐어! 안 듣는다 안 들어!"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부화를 짓누르지 못하고 좀 전 상황을 다시 한번 꺼내든다.
"그래 너 또 그렇게 학원에 가서도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들 앞에 엄마 흉봐라 오늘 낮에 엄마가 해준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고 12시가 넘어서 자라고 하는 엄마만 또 아동학대범 마귀할멈 되는 거야 그렇지? 엄마는 너한테 너무 실망해서 이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앞으로 엄마를 아는 채도 하지 마!"
"할 말이 없어서 그랬어. 엄마가 묻는 거에 할 말이 없어서 그랬어. 엄마 서율이한테는 안 그러잖아."
"서율이는 너처럼 안 하니까!"
"서율이도 이렇게 말하는데 그래도 안 그러잖아"
"서율이는 너처럼 안 해! 너는 그리고 끝까지 네가 잘못했다는 말을 엄마에게 안 하는구나?"
"아까 했어!"
미안한 사람이 사과하는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기억도 안나는 시점에 했다고 저렇게 당당해도 되는 일일까?
서율이는 너처럼 안 한다는 나의 답 과연 그 답이 맞는 걸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첫째를 겨우 재우고 내가 푼 답은 맞는 것인지부터 처음부터 되짚어 본다.
첫째가 내어낸 답 '서율이한테는 이렇게 안 하잖아!'
내가 내어낸 답 '서율이는 너처럼 안 하니까!'
둘째가 그랬으면 정말 그렇게 안 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서율이가 나에게 잔뜩 서운한 얼굴로 "마라탕 안 사줘서"라고 했으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장난스럽게 어르고 달랬을지도 모른다.
문제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둘째가 나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어쭈구리'를 외치며 이건 뭐고 이건 뭐야 이건 다 모야 하고 서운함을 깨우치게 했을지도 모른다.
더 놀고 싶다고 잠들지 않으려 했으면 어땠을까. 이마를 쓸어 달래줬을 것이다.
나는 첫째와 둘째에게 다른 엄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첫째와 둘째가 뚜렷이 다르다고 느끼는 건 받아들이는 내가 뚜렷이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똑같은 어리광인데
둘째가 첫째 처럼 하지 않는 것도 내가 다르게 했으니 돌아오는 것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첫째를 낳고 19개월 만에 품에 안은 둘째.
태어나자마자 첫째와 나눠 안고 나눠 업고 나눠 먹이고 첫째는 그간 늘 오롯이 줬다는 마음에 커갈수록 둘째를 짠하게 여겼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 속에 살아서 첫째 너는 다해줬잖아.
둘째 너는 엄마가 그랬지.
이 마음으로 둘을 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갓난아기시절 몇 개월에 마음이 멈춰선채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아이들에게 아직도 대입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큰애 입에서 나오는 그 답을 오답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뱉는 말이 역시나 오답이었음에도.
그 문제를 이제야 거슬러 올라가 풀어보려 애쓴다.
이쁜 것만 쥐어 먹이고서는
이쁜 것만 들어간 그 속이 여전히 쥐어준 대로 이쁜지 확인하지 못했다.
일요일 아침이 되어 늦잠을 자고 일어난 첫째에게 나는 답을 내었음에도 선뜻 아무 말하지 못했다.
또 다시 오답일까봐. 나는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니까.
첫째가 좋아하는 유부초밥과 미역국을 내어주었다.
첫째는 슬쩍 웃더니 맛있게도 먹으며 말했다.
"엄마, 나 탄산수 먹어도 돼?"
"그래. 원래 안되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같이 먹으면서 힐링해"
일요일 아침 처음 내가 뱉은 말에 첫째가 끄덕이며 선반에 유리잔을 꺼내어 얼음을 잔뜩 넣는다. 냉장고에서 탄산수 한 병을 꺼내 탄산소리가 시원하게 나도록 콸콸콸 붓는다.
"너 참 맛있게도 따르네. 엄마도 한입 먹고 싶다"
"한입 줄까?"
"정말?"
"먹어봐!"
"와, 시원하다! 맛있다. 서안아 엄마도 어젯밤에는 미안해. 그런데 엄마한테 버릇없이 말하는 거 너 그거 고쳐. 엄마가 어른이라도 그런 말 자꾸 들으면 정말 서운해."
"응"
"그런데 서안아 응 말고 그 뒤에 할 말 없어? 뭐 나도 미안해 라던지"
"어제 했잖아"
"엄만 못 들었는데"
"어제 했어"
그래. 어제 해도 또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것도 나의 오답이냐?
그렇게 또 다시 시작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