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와의 동거
AM 7:30 어김없는 알람이 울리고 출근 가방을 든다.
10분 뒤에 일어나는 알람이 울리면 일어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다녀올게' 인사를 마쳤다.
날도 흐리고 이런 날은 아침에 둘 만남아 등교하는 남매가 왠지 더 짠하다.
현관을 나서다 말고 다시 들어온다.
포스트잇이 어디 있더라. 항상 있던 자리에 포스트잇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의 책상 서랍을 뒤져 메모지 두장을 꺼낸다.
도톰한 뭉치에 같은 메모지가 잔뜩 있어 두어 장 쓴다고 태도 안 날듯 했다.
역시나 아이들 서랍엔 없는 게 없다.
마음을 담아 메모를 쓴다.
이름에 하트를 꼭 붙여가며 오늘 잘 지내고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한 장은 둘째의 책상, 한 장은 첫째의 책상에 올려놓고
엄마 다녀올게! 다시 소리 내어 현관을 나섰다.
PM 6:00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아직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대충 씻고 저녁을 차린다.
오늘은 오므라이스!
예쁜 그릇에 한 그릇 한 그릇 담아본다.
아이들이 왔다.
"왔어요~~~"
힘을 짜내어 현관에 마중 간다.
둘째 표정이 안 좋다.
"엄마, 왜 내 메모지 썼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어?"말고는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짧은 시간 머릿속을 복잡하도록 굴린다.
짜낸 힘에 힘을 더 짜내야 될 시간이 왔다.
"아, 서율아, 아침에 엄마가 너희들한테 편지 써주고 싶은데 엄마 포스트잇이 없는 거야,
그래서 너 서랍에 메모지 좀 썼어~. 똑같은 메모지가 50장은 돼 보이던데!?"
귀여운 투정에 다정히 답한다.
"아니, 왜 묻지도 않고 써, 내가 아끼는 건데!"
둘째가 계속해서 서운하다는 듯 짜증을 낸다.
"김서율, 너한테 편지 써주려고 쓴 거잖아, 다른 사람 아니고 너한테 써주려고,
그리고 아침에 엄마가 출근하느라 바쁘니까, 급하게 썼어 그게 그렇게 서운할 일이야?"
"누나한테도 썼잖아"
말문이 막힌다.
사랑을 담아 아침에 별생각 없이 쓴 메모 두 장에 이런 화답이 돌아올 줄이야.
거스르고 거슬러 올라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을 해야 할지 막힌다.
그리고 피곤하다.
그리고 나도 서운하다.
마흔을 앞두고 집에 굴러다니는 포스트잇 한 장 쓰다가
이렇게 붙잡혀 설명해야 되는 나도
그런 내 마음도 서운하다.
"나한테 소중한 건데, 나도 아껴 쓰는 메모지인데, 누나한테도 쓰고"
둘째가 계속 중얼거린다.
"일단 씻고 와"
더 어를 말도 더 달랠 말도 없어 입을 다물었다.
둘째는 씻으러 가면서도 중얼거린다.
욕실에서도 벽을 콩콩 치는 소리가 들린다.
"서율아!"
욕실 문을 열고 둘째를 불렀다. 둘째는 잔뜩 뿔난 얼굴로 욕실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너 엄마가 너 메모지 두 장 쓴 게 그렇게 화가 나?"
둘째는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어!!! 내가 아끼는 건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아 그래? 그럼 너도 이제 엄마 소중한 거 쓰지 마, 샴푸도 비누도 이 옷도 다 쓰지 마, 너 나가 안 되겠다 너 나가!"
나는 또 어른인 척하는 연극을 멈추었다.
둘째의 흠칫 놀라는 어깨가 보인다.
작은 어깨를 바라보며 수만 가지 생각을 한다.
나는 이 상황을 곧 후회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후회할 것 같으면 멈추고 아니면 나아가도 될까.
나는 과연, 나는 대체 왜 자꾸만 화가 나는 것일까.
둘째는 흠칫 놀라며 칫솔을 들다 멈추고는
"그럼 나 죽으께"
라고 말한다.
이번엔 내 어깨가 놀란다.
이 조그만 몸에서 조그만 입에서 죽음이 뭔지는 알고 가볍게 내뱉는 건지
아니면 내가 둘째를 그만큼 깊게 찌른 것인지
일전 첫째의 일기장도 둘째의 지금도
왜 아이들이 자꾸 죽을게 죽고 싶다 죽음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쉽게 내뱉는 것인지
이것은 또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이 수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섰다.
이번에 나는 10살이 되었다.
"그래! 한번 해봐!"
둘째는 욕실에서 나와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책상의자를 창문으로 끌어당기곤 그 위에 올라섰다.
나는 너무 놀라 잡으러 갈 준비를 하다 멈췄다.
둘째는 창문밖을 가만히 바라보다 엉엉 울었다.
"죽기 싫어"
하염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안 죽을래"
"얼른 씻어!"
안도하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은 채 더 말하지 않고 다시 씻으라 말했다.
화장실 물소리가 들리고 나는 거실에 앉았다.
씻고 나온 둘째가 옷도 입지 않은 채 나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곤 말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 미안해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둘째를 수건으로 싸고는 무릎 위에 눕히고 꼭 안았다.
너무 커버려 팔다리가 다 삐져나오지만 가슴으로 꼭 안았다.
"너 죽음이 뭔 줄 알고, 너 어디서 왔어?"
"엄마 뱃속"
"너 그런데 그 뱃속을 앞에 두고 죽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거야?"
"엄마가 내 메모지 썼잖아, 나 나가라고 했잖아, 나는 나가면 아무것도 못해
내가 아끼는 메모지 엄마가 썼잖아, 내가 얼마나 아끼는데, 누나한테도 썼잖아"
둘째는 다시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메모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정말 메모지가 소중하구나.
죽음은 입으로 뱃어내는 만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았으면 됐다.
그래. 싶었다.
"엄마가 다음번엔 꼭 작은 종이라도 우리 서율이한테 물어보고 쓸게. 엄마가 정말 미안해."
둘째가 끄덕인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차 안의 음악이 멈추고 둘째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반갑게 둘째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았다.
"서율이~잘 잤어?"
"응, 엄마 우리 화해한 거지?"
"응, 당연하지 우리 아들, 엄마가 사랑해"
역시 내가 끝까지 진다니까.
그날 저녁 잠자리 준비를 하다 둘째가 다시 슬며시 다가오며 말했다.
"엄마, 우리 어제 일은 없었던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지우는 거야"
둘째 스스로도 '죽으께!' 를 내뱉고 책상의자에 올라선 스스로의 행동이 꾀나 충격적이었을 테다.
"아니,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아. 대신 어제의 행동이 얼마나 무서운 행동인지. 다시는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그것만 알고 넘어가면 돼. 엄마가 말만 해도 그때의 너 스스로가 너를 기억할 거야. 그럼 된 거야. 너는 금세 올바른 생각을 하고 여전히 여기 있잖아. 그렇지? 일어난 일에 이유가 없는 일은 없잖아? 너도 엄마도 그 일이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그 일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거야,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알았지?"
"응, 엄마"
둘째가 내 무릎에 누우며 대답했다.
"엄마, 그리고 내 메모지 쓸 때는 꼭 물어보고 썼으면 좋겠어"
둘째가 한번 더 말했다.
'아 내가 왜 그 메모지를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