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와의 동거
점심시간, 잠깐 눈이나 붙여보려 의자에 기대 눈을 감는 동시에
주머니 속 전화기의 진동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았지만 낯설지 않은 전화번호가 보였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온듯한 전화다.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밖을 나서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학교 위클래스입니다. 서안이 어머니 되시죠!?"
"네 안녕하세요."
"지난주부터 서안이가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았어요. 혹시 가정에서 이야기하던가요?"
"아니요."
깜짝 놀랐다.
도대체 우리 아이가 무슨 상담을 받을 일이 있어서 상담실에서 연락까지 왔다는 말인가.
'엄마 위클래스가 뭔 줄 알아?'
'응, 학교폭력 상담센터 아니야?'
'그런 것 아니라도 마음 힘들 때 가서 상담받고 할 수 있는 곳이던데, 반친구도 상담받으러 가곤 해'
'그렇구나'
며칠 전 저녁식사 중 아이의 질문에 대한 짧은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서안이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더라고요. 일기장에도 '죽고 싶다'라는 말을 적은 적도 있고요. 그래서 담임선생님 전달로 상담클래스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어머니, 서안이가 일기장에 그렇게 적은 것 혹시 보셨나요?"
"네, 아이 일기장을 매번 보는 건 아닌데 우연히 그 일기를 얼마 전에 보게 되었어요."
"어머니 그 일기를 보고 어떻셨나요?"
"충격적이었어요. 저는 저대로 퇴근하고 저녁이든 주말이든 모든 것을 아이들 위주로 애썼는데 아이가 저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잔뜩 쓰고 죽고 싶다는 말까지 적은걸 보고 상당히 충격받았어요. 저는 공부에 대한 큰 기대나 짐을 아직은 짊어지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학원도 피아노학원 서안이가 좋아하는 것 하나 보내고 매일 방과 후 수학 영어 다니고 수요일 하루는 미술을 다니는 그런 스케줄로 보내고 있거든요."
"그렇죠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많이 놀라셨네요. 그래서 그 일기를 보고 혹시 민지에게 어떻게 해주셨나요?"
"그 뒤로 저도 반성을 많이 했어요. 매일 집에 오면 수학한 장 영어 한 장을 꼭 풀게 했었거든요. 그게 공부를 잘하라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라고 매일 붙잡고 한 장씩 시켰다기 보단 그냥 성실함과 꾸준함, 책임감 그런 것 길러주고 싶어서 꼭 수학영어를 한 장씩 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는 매일 저녁 부담스럽고 또 저도 하기 싫어하는 행동이나 의욕 없는 자세를 보면 핀잔주게 되고 쓴소리 하게 되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 일기 사건 이후로 월수금 수학 한 장, 화목토 영어 한 장 이렇게 바꿔서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버거운가 보더라고요."
"아, 그렇군요. 어머니께서도 변화를 주셨네요. 어머니 서안 이에게 이것저것 질문해 보았고 그중에 하나가 서안이가 제일 힘든 게 어떤 점인지 물었어요. 서안이는 지금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없는 상태더라고요. 본인은 열심히 하는데 아무리 해도 뚜렷한 결과가 잘 안 나오니까 그런 것들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네. 서안이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저도 알아요. 아직 공부방법이 서툰 건지 서안이는 하는 만큼 확 늘거나 스스로 보고 이해하거나 하는 편은 아닌 성향인 것 같더라고요. 알면서도 하루 한장하는 문제집도 하기 싫어서 발도장 쿵쿵 찍으며 걸어와서는 던지듯이 내려놓는 문제집에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문제도 제대로 읽어보려 하지도 않고 '몰라'부터 외쳐대는 모습에 저도 지나고 나면 후회하면서도 저녁마다 계속 혼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점 인정합니다"
"아구 참, 어머니께서도 퇴근하셔서 아이들 공부까지 봐주시고 힘드시겠어요."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게 하지 않나요."
"또, 서안이가 비교당하는 게 싫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비교는 정말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참 이게 달라요.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이 자라는데 동생은 귀찮아하면서도 이왕 하는 거 얼른하고 쉬자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문제집 들고 와서 스스로 읽어보고 찾아보며 모르는 문제도 거의 없이 술술 풀어대요. 그러면 저도 사람인지라 칭찬이 자꾸 동생 쪽으로 쏠리게 되고 그러면서 서안이는 더욱 하기 싫어하고 이게 참 반복되는 현상인 것 같아요. 그리고 비교를 안 할래도 본인 눈에도 동생 문제집에는 동그라미 투성이인데 본인 문제집은 단순한 연산 문제임에도 불과하고 동그라미보다는 풀지 않거나 별표 되어있는 문제 투성이니까 비교의 말을 안 해도 본인 스스로가 비교를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틀리면 별표를 쳐주거든요."
"네, 동생이 워낙 잘해버리면 같이 살면서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보이고 들리고 서안이가 그러면서 더욱 자신감을 잃어가고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리 좋은 스승이라도 부모는 이게 하다 보면 아이가 모르고 틀리고 남의 아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설명도 되고 한데 내 아이에게 그 감정을 다 내려놓고 선생님처럼 가르치기가 참 힘들어요 어머니. 오죽했으면 공자와 맹자도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말이 있겠어요. 어머니께서도 퇴근하고 힘들게 애살가지고 봐주시는 거지만 이렇게 계속 가다가 오히려 한 문제 두 문제 더 풀려다가 서안이는 자신감을 계속 잃어가고 힘들어하고 역효과가 날 수도 있어요."
"그렇죠 선생님, 이게 제 욕심이에요. 그냥 대단한 거 안 바라고 학년만큼은 따라갔으면 하는 욕심에 저녁에 온 가족이 피곤한데도 꼭 앉아서 그거 한 장을 풀어야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그리고 학원에 보낸다 해도 저는 아마 이 아이가 학교공부와 학원공부를 잘하고 있나 싶어서 매번 체크할 것 같아요.
선생님, 제가 결혼도 일찍 하고 아이도 둘을 일찍 낳은 편인 데다가 일까지 하니까 주변에 비교대상이 되는 또래 엄마도 친한 엄마도 하나 없어요. 그래서 그런데 다른 집에는 이렇게 엄마가 혹은 아빠가 저녁마다 숙제나 이런 걸 봐주지 않나요? 제가 유별난 건가요. 아이에게만 아직 맡기기엔 아이가 그렇게 책임 있는 나이가 아니라 참 모르겠네요"
"집집마다 다른데 어머니처럼 매일 봐주시는 부모가 많다고는 할 수 없어요. 다만 지금 서안이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한 문제 두 문제 하려다가 앞으로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가고 하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완전히 공부를 놔버릴 가능성도 있어요.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해서 해나가기보다는 잠깐 쉬어가는 것도 어머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서안이에게 물어봤어요. 그럼 저녁에 엄마와 공부를 안 하면 괜찮을 것 같냐고 서안이가 말을 참 잘하더라고요. 자기 자신도 이제껏 해온 게 있고 또 해야 된다는 걸 알아서 머뭇거리지만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
"네 선생님. 저녁에 한번 서안이랑 이야기 나눠볼께요. 갑자기 아무것도 안 하려니 그건 참 어렵네요. 서안이가 워낙 공부를 힘들어해서 문제집도 제일 쉽고 간단한 것으로 다 맞춰있거든요. 그래도 안 하려고만 하고 힘들어만 하니까 제 욕심에 또 걱정되고, 일단 하루에 세문 제 만 하는 걸로 서안이랑 다시 이야기해 볼게요. 세 문제 정도면 열심히 풀지 않을까요."
"네 어머니. 저녁에 서안이랑 이야기해 보시고 한번 찬찬히 같이 풀어보아요. 저희도 일주일에 한 번씩 서안이랑 상담하기로 했으니 다음 주에는 서안 이에게 '죽고 싶다'라고 쓴 것에 대해서 알아볼까해요. 지난주랑 오늘은 그 말 자체가 무거운 말이기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거든요. 다음 주에 오면 센 표현을 하고 싶어서 의미 부여 없이 쓴 말인지, 정말 진지하게 죽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기까지 한 건지 그런 단계에 대해서 어떤 단계인지 알아볼께요. 알아보고 어머니께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안이에게 상담내용에 대한건 모르는 걸로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상담내용은 모르는 것으로 하고 서안이와 이야기 나눠볼게요."
오후 내내 마음은 집에 가있었다.
퇴근하고 서안이를 보자 서안이가 먼저 물었다.
"엄마 혹시 오늘 위클래스 전화 왔었어?"
"응 맞아, 선생님 전화 오셨더라?"
"응"
서안이도 나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서안아 오늘부터 수학 한 장 말고 월수금 세문제씩만 풀어볼래?"
"세문제? 너무 적지 않아?"
"그냥 그러면 너도 기분 좋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어는 네가 재밌어하니까 그대로 화목토 한 장씩 하고 수학하는 날에는 세문 제 만 해보는 건어 때?"
"그래, 그럼 엄마 대신 내가 해보고 더 해야 되면 더 풀어도 돼?"
"당연하지!"
그렇게 월수금 하루 수학 세문제, 화목토 하루 영어 한 장으로 변경되었다.
세문제는 좀 그랬는지 아이도 처음엔 한 바닥 정도 문제를 풀어보다가 그 다음번엔 세문제도 버거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분수 더하기 빼기 그 세문제
버거운 건지 하기 싫은 건지 엄마라는 내 눈에는 하기 싫은 것으로만 보였다.
그 하기 싫음에 엄마라는 나는 또 한숨이 나고 굳어져만 간다.
나는 과연 어떤 엄마이고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아이가 모르는 것에 아이가 하기싫은 것에
한숨이 나고 화가나는 것일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내 아이를 안다고 하는 걸까.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겠다 하는 걸까.
---------------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