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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n 18. 2018

10. 행복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2017.4.8. 쿠스코, 페루(D +61)

이래저래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다시 떠나야 할 순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애써 모른 체 했던 것은, 나 스스로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숙소에서 만난 동갑내기 P가 새로운 여행 메이트가 되어 나를 독려해줬다. 정산을 해보니 마지막 숙소에서 지낸 날은 20박 21일. 초반에 묵었던 두 군데의 호스텔과 마추픽추의 1박 2일까지 합치니 쿠스코에서 보낸 시간은 얼추 한 달이었다.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이, 언제 어디로 떠나리란 준비도 없이 흥청망청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스페인어 과외는 차마 2주를 다 못 채우고 끝나고 말았지만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엔 충분했고, 길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소란스런 나날로 인해 남미에 대한 낯섦도 모두 사라졌다. 친구들은 늘 내게 'más feliz?(많이 행복해? /사실 이게 정확한 문장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라면 아마도, 뭐 어때, 알아들으면 됐지.라고 하겠지)'라고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말이 서툴러도, 그들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도, 뭘 해도 버벅거려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걸 깨달은 시간들이었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니콜라스와 카밀라 커플은 넉넉한 예산도 없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도착하는 곳마다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했고, 모이세스는 호스텔에서 청소 등의 일을 하며 숙박비를 아끼고  있었다. 미겔 역시 모이세스와 함께 길거리에서 팔찌나 초콜릿 등을 팔며 그날의 식사를 충당했다. 늘 ‘보통 수준’의 삶을 쫓으려던 한국에서의 나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실은 보통 수준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언제나 남과 비교했고, 남들보다 부족해 보이는 내 형편이 드러나는 것이 창피했다. 그러나 쿠스코에서 만난 새 인연들은 누구 하나 그런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곤 현재 직업이 없다는 내게, 'pobre coreana! 그럼 이렇게 우리와 같이 팔찌와 초콜릿을 팔면 직업이 생기니 이제 여기에서 일을 하면 되겠다'고 유쾌하게 받아치곤 했다. 늘 같은 옷을 입고 만나도 수중에 돈이 부족해 가능한 저렴한 식사를 찾아다녀도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지금 각자가 처한 현실이 그러할 뿐이었다.  

그들 중에 아마도 사실은 내가 가장 가진 것이 많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려 온 사람이었을 거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가진 것이 적은 것도 나였다. 언제나 그 아이들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먼저 웃어 줬고, 나의 행복을 물어왔다. 내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에는 내가 알던 것 외에도 너무나도 다양한 삶들과 그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있었다. 그걸 인정한다면, 저들처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여행은 이제부터가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쿠스코에서 한 달, 아직 부족하겠지만 충분한 '남미다운' 마음을 무장하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adios(아디오스, 영원히 헤어질 때 하는 인사)가 아닌 hasta luego(아스따 루에고, 다음에 만날 때까지)라는 인사를 남겼다. 왠지 언젠가는 다시 이곳을 찾을 것만 같다.  

잘 있어 쿠스코! 또 보자 쿠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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