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수영을 다녀왔다. 6월 3일부터 시작해서 12월 30일까지, 7달 째다. 수영은커녕 물에 제대로 뜰 줄도 몰라서 물만 보면 겁먼저 먹었던 내가 자유형, 배영, 아주 느리지만 평영, 아직도 모양을 잡아가는 중이지만 접영을 할 줄 알게 되었고, 내 키보다 깊은 풀장에 가서 수영하는 경험도 해봤다. 예전에는 수영하다가 조금만 힘들면 멈춰 서서 쉬었다 다시 가곤 했는데 이제는 웬만해선 마지막 지점애 도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숨이 차도 어찌 되었건 끝이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곤 한다.
하지만 어느새 7달이나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침에 수영에 가기 위해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들다. 그 사이에 눈뜨자마자 스트레칭하기, 모닝페이퍼 쓰기 등 다양한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그냥 일어나자마자 모자 쓰고 수영장으로 직행하는 날이 제일 많았다. 오늘도 힘들게 잠에서 깨어 수영장에 갔는데 하필이면 보일러가 고장 났단다. 한 해의 마지막 수영을 하는 오늘, 물이 얼음처럼 차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원래 다른 수업 내용을 준비해 왔다 했는데, 그대로 하기엔 우리들이 너무 추워할 것 같다며 그냥 장거리 연습에 들어가자고 했다. 마침 월요일은 오리발을 끼는 날이다. 25미터 수영장을 4바퀴 한 세트로 총 4세트. 800미터를 완주하는 게 오늘의 목표였다. 오리발을 끼면 그래도 자신이 좀 붙는 편이었는데 한 번에 200미터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었다. 두 바퀴째 돌 때부터 급속도로 줄어드는 체력. 속도는 느려지고 팔동작도 희미해지고, 나는 자꾸만 뒷 줄로 밀려났다. 결국 세 번째 세트에서는 4바퀴 완주를 못하고 절반만 돌았다. 나머지 사람들이 4바퀴를 완주하고 올 때까지도 헉헉 거리는 숨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지막 4세트는 어떻게든 완주하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킥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첫 세트를 시작할 때 너무 빨리 가기 시작한 것이 문제인 듯하여 이번엔 일부러 천천히 체력을 아끼며 나가본다. 그래도 4번째 바퀴까지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간에 힘들다고 멈춰서 발을 바닥에 닿게 두진 않았다. 느렸지만 마지막 세트를 끝까지 완주해 냈다.
집에는 아직도 술냄새가 배어있는 듯했다. 전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았는데 마시다 보니 집에 있는 술을 다 마셔버렸다. (그것도 모자라서 밖에서 또 마셨다) 다행히 오늘은 날이 많이 춥지 않아서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키며 청소를 했다. 집안일은 어쩜 이렇게 해도 해도 끝이 없는지. 그날 우리는 모여서 함께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쉽진 않으리란 걸 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회사 일에 지쳐있고, 회사를 다니지 않는 나는 딱히 재미 있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실은 우리는 다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텐데. 그 에너지를 펼칠 수 없는 환경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조금 슬퍼졌달까.
이번 연말엔 웬일로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의 시간도 가졌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던 2020년 연말정산 책이 있었는데 '뭐 이런 것까지'라는 생각으로 몇 해동안 책장에 방치해두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갑자기 시간을 잡고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몇 개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꽤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을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역시 놀기 때문일까, 올해의 잃은 것에 월급, 소속, 직함 등의 단어를 적어 내려가고, 그 곁에 '딱히 좋아서는 아니었지만 필요에 의해 유지해야 했던 것들'이라는 부연 설명을 적었다. 얻은 것에는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벌인 (돈 안 되는) 재미있던 일들을 적어 내려갔다. 이 정도면 올 한 해 잘 산 것 아닌가 싶은데, 여전히,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안다. 결국 다양하게 노는 일이 나의 하고 싶은 일임을 깨달았으니, 내년엔 이 일들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겠지.
한동안 실용서, 경제경영 서적만 읽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집어 들었다. 아 그렇지, 내가 좋아했던 건 이런 책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어 더 천천히 오래 붙잡고 읽고 싶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한 사람이면서도, 언젠가 문학과 예술이 사는 데 어떤 쓸모가 있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 있다. 실은 노는 걸 좋아하는 나의 삶이나 그리 다를 것도 없어보인다. 나라는 사람은 애초에 쓸모 없는 걸 좋아하고 쓸모 없는 걸 추구하는 사람 아니었을까. 아무튼 결국 좋아하는 걸 하라는 건 이런 말일까. 그런 게 없네 어쩌네 해도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붙들고 싶은 뭔가가 잘 찾아보면 보이게 마련이다. 그 행위의 쓸모의 유무를 떠나서.
어쩌다 보니 주변 사람들과 평소보다 많은 연말 모임을 함께 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은 좋지만, 뭐랄까 신나거나 들뜨거나 하는 연말의 느낌은 잘 안 든다. 최근에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가 속해있는 세상에 둔감했고, 그 세상은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거리를 두며 살았다. 늘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에 진짜 내 삶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온전한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올해의 나는 내가 멀리하고 싶었던 내 삶과 조금씩 친해지는 연습을 한 느낌이다. 이것이 나를 도울 수 있을까, 나를 구할 수 있을까. 울림이 큰 말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번 연말에는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시간을 가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