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짱없는 베짱이 Jul 02. 2018

16. "나를 만났으니 넌 정말 운이 좋아."

2017.4.20. 바예그란데, 볼리비아(D +73)

라 이게라(La Higuera)로 가는 길은 일찍이 접었지만, 문제는 남아있었다. 이제 수크레로 가야 하는데 터미널에도 어디서도 수크레행 버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 경유해 온 산타크루즈도 아니고, 이번엔 코차밤바라는 도시에 들려 수크레로 가야 한다던가, 버스를 타고 온 볼리비아를 뱅뱅 돌아야 했다. 심지어 사투리가 심한 건지 터미널 직원들의 말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또다시 의외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마치 걸그룹 시스타의 효린을 연상시키는 마리사벨은 21살 대학생. 어두워진 밤, 길거리를 지나는 나를 갑자기 불러 세워 자기와 함께 사진을 찍자더니 이름은 뭐야, 어디에서 왔어, 여기서 뭘 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남미에 와서 의외였던 것 중에 하나가 생각보다 사람들이 호구조사를 좋아한다는 거였는데 특히나 몇 살? 결혼은? 아직 한 번도? 아이는? 왜 없어? 등을 초면에 거리낌 없이 물어 당황하곤 했었다. 마리사벨 역시 당연하다는 듯 아이 여부를 물었다. 그런데 아이가 없다는 내 대답에 대한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애가 있는데! 이것 봐, 귀엽지? 3살이야."

마치 자기 애를 자랑하고 싶어 물어봤던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는 그녀. 차마 남편은 있는지, 학교를 다니면서 애를 같이 키우고 있는 건지, 돈은 벌고 있는지, 이젠 내 쪽에서 갑자기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옆에 함께 있던 남학생 세사르는 마리사벨의 아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너는 나를 만났으니 운이 정말 좋은 거야. 내일 같이 수크레로 가자."   

학교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는데 실습 때문에 친구들과 바예그란데에 왔다고, 본인도 내일 수크레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과 다시 합류해야 한다고 마리사벨은 말했다. 수크레로 가는 길은 복잡하고 모르는 사람이 가려면 돈도 많이 들 텐데, 넌 정말 운이 좋아. 씨익,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표정에 마치 홀린 듯 도와달라고 했다. 내일 꼭 나를 데리고 가줘.

 

인적도 드문 마을 외곽의 주유소. 이곳이 바예그란데에서 수크레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터미널이라니...!
주유소 한 구석에 리어카를 끌고 와 음식을 팔던 상인들. 이들에게서 5볼짜리 점심을 사먹었다.  


다음 날 우리는 터미널도 아닌 마을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 만났다. 이곳은 수크레로 가는 버스가 지나는 길이므로, 여기서 기다리다가 오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버스가 몇 시에 오는지, 몇 대나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남미 특유의 여유 있는 표정으로 'no te preocupes(노 떼 쁘레오쿠뻬스, 걱정하지 마)'를 외치는 아이들. 우리는 기약없는 버스를 기다리며 흙먼지 날리는 주유소 한쪽 구석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고데기로 머리를 말다가, 주유소를 지나는 상인들에게 점심을 사 먹기도 했다.  


이날 탄 버스는 차마 잊을 수가 없다.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듯한 좌석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먼지 같은 것이 잔뜩이고, 등받이는 뒤로 맘껏 젖혀지지도 않았다. 창문은 아무리 꼭 닫아도 버스가 속력을 낼 때마다 슬금슬금 틈이 벌어지며 열린다. 심지어 아래쪽 짐칸을 열어주지 않아 내 캐리어와 마리사벨네의 많은 짐을 다 버스에 들고 올라야 했다. 개의치 않고 여기저기에 앉는 아이들을 따라 나도 자리를 잡았다. 만난 지 만 하루도 안된 마리사벨과 세사르,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엘리자베스와 로사리나. 사실 많이 어색하기도 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기분도 잠시 (불편한 자세나마)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각자의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노래를 듣다가, 나에게 케추아어를 가르쳐 주다가, 하는데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그렇게 힘든 것도 모르고 거진 6시간을 달렸다. 직선 코스란 한 번도 없이 울퉁불퉁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알고 보니 이 길은 볼리비아 내에서도 길 안 좋기로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고.  


중간 지역인 비야 세라노에서 밤을 맞이하며 찍은 기념사진. 뒤늦게 친해진 엘리자베스와 로사리나와 함께. 세사르가 찍어줬는데 초점이 다 나갔다.


수크레까지 한 번에 가는 줄 알았던 버스는 비야 세라노(villa serrano)라는 중간 마을이 도착지였다. 이미 시간이 늦어 수크레 행 버스는 내일 새벽에야 있다길래 같이 버스를 예매하고 근방에 숙소를 잡았다. 세상에 한 번도 묵어본 적 없는 가격 5볼(한화 약 1,000원??). 사람 하나 지나다닐 정도의 틈만 두고 2층 침대가 빼곡하게 늘어선 방이었다. 낯선 도시, 낯선 아이들과의 낯선 하룻밤. 원래 여행이란 이렇게 예측하지 못하는 일들의 연속이라던가.

그러고보면 남미를 떠나올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무엇이든 장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버스도 비행기도 심지어 한 끼 식사도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다행인지 애초에 계획이란 걸 세우지 않았던 나는 마음대로 안된다고 느끼는 상황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그것이 내 안전에 관계된 것만 아니라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누구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여행자의 신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은? 이들은 어떨까? 버스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고(못하고), 계획에도 없던 도시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러다 만약 정해진 날짜까지 수크레에 가지 못했다면? 실은 그것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걸까.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는 듯 즐거워만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이 신기할 뿐이다. 앞선 여행길에 만났던, 중남미에서 일을 하려면 속이 터지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나도 이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다음날 아침, 아이들 덕분에 나는 무사히 수크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르르 버스에 내려 터미널 근처 노상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세사르는 내게 어떤 미끄로(마을버스)를 타야 중심가로 갈 수 있는지 알려줬다. 마리사벨은 만났을 때처럼 쿨하게 인사를 하곤 헤어졌다. 오히려 뒤늦게야 가까워진 나머지 아이들이 아쉬워하며 수크레에 얼마나 있을 건지, 내일도 과 사람들 다 같이 모이는데 올 수 있는지 물었다. 터미널 근처엔 이미 도착한 다른 친구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헤매고 고생을 하며 이곳에 왔을까. 제시간에 오긴 올 수 있었을까. 그제야 캐리어 바퀴가 터졌다는 것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여행길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내게 손 내밀어 준 그 아이들 덕분에 무사히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체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