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보게 신작 소개] 보드게임 <가지각새>
브런치에 보드게임 일상에 대한 글을 쓰면서 언젠가 '이건 나를 얼마나 먼 곳으로 데려갈까'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적 있다. 그때는 내가 보드게임으로 모임을 꾸리고, 그 모임을 1년 넘게 지속하고 나아가 보드게임을 매개로 이벤트까지 진행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며 붙여본 제목이었다. 그런데 이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또 새로운 곳으로 넘어왔다. 이번엔 말하자면 크리에이터의 세계랄까?
어느 날 보드게임 모임으로 친해진 멤버가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보드게임 제작/유통 회사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크리에이터를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이런 인기 없는 브런치 글도 되겠어? 하면서도, 일단 주사위는 던지고 봐야 한다는 보드게임의 정신으로 신청서를 적어 내려갔다. 무엇보다 콘텐츠 제작을 위한 게임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비록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모임이었지만 점차 멤버들에게 소개할 새 게임이 (틈틈이 게임을 사 모으는 와중에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회사는 나를 크리에이터의 일원으로 포함시켜 줬다. 그리고 얼마 전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새 게임을 받게 되었다. 이름하여 <가지각새>.
<가지각새>는 가방에 넣고 다녀도 될 것 같은 작은 박스 사이즈의 카드 게임이다. 사실 게임을 뜯어보기 전부터 박스의 그림만 보고도 이 게임이 마음에 들었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예뻤기 때문이다. 보드게임에 큰 관심이 없는 친구에게 이 세계를 어필할 때 '예쁘다'는 게 '재밌다'는 것만큼이나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모습을 몇 번 봤다. 특히 친구 중 "난 머리 쓰는 것만 아니면 돼"라던 녀석 하나는 내가 알려 준 <커피러시>를 해보곤 (심지어 꼴찌를 했음에도) 나를 따라 게임을 샀다. 무려 나에게도 없는 확장팩 <케이크러시>까지 사서 맛있는 케이크와 함께 우리 집에 가져왔었다. <커피러시>도 나름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게임인데 ㅎㅎ 일단 구성물이 예쁘고 테마도 좋다 보니 가지고 싶고 또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묘한 욕구를 자극한 모양이다.
멤버가 좋다. 함께 <커피러시>를 하는 친구들을 모아서 <가지각새>를 뜯었다. 다른 사람의 설명이나 어딘가에 올라와 있는 룰 영상 참고 없이 게임에 동봉된 설명서만으로 게임을 익혀 나가는 건 내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예상했던 데로 일단 일러스트가 예쁘니 친구들에게 반응이 좋다. 설명서에 '흰머리오목눈이', '사랑앵무' 등 카드에 등장하는 새들의 이름까지 소개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가지각새>의 룰은 단순하다. 앞의 사람보다 높은 조합의 카드를 내서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먼저 다 털어 버리면 된다. 다만 높은 조합의 카드를 내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니, 손에 들어온 카드는 절대 그 순서를 바꿀 수 없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새들은 같은 새들끼리 뭉칠수록 위력이 세지기에 중간에 섞여 앉은 다른 새들을 빨리빨리 내보내고, 때로는 바닥으로 내려온 타인의 새를 내 손으로 가져오기도 하며 같은 새들끼리 더 많이 뭉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짜야한다.
손에 들어온 카드 배열을 바꿀 수 없다는 규칙이 보드게임 초심자들에겐 좀 익숙지 않은가 보다. 뭐든 가지런하게 정렬된 모습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하지만 이건 생각보다 그리 낯선 규칙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콩심기 게임 <보난자>가 있다. <보난자>는 카드가 들어온 순서대로 내 밭에 콩을 심어야 하기에 때로는 아주 큰 수확을 앞둔 밭을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또 다른 카드게임 <크라스 카리어트> 또한 <가지각새>와 비슷하게 진행되는 게임으로 손에 들어온 카드의 배열을 그대로 놓고 플레이를 하며 조합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무작위로 나눠 받는 카드들이 우리 삶을 구성하는 우연의 요소들 같다는. 그 요소들을 잘 정렬해 두었다가 필요한 순서대로 꺼내어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가끔은 애써 가꾼 밭을 갈아엎기도 하고, 순서만 조금 바꾸면 이길 수 있었던 상대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이 카드 게임들처럼, 그래도 계속 플레이를 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것 같은 일들이 하나로 모아지며 생각지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마도 요즘, 나의 보드게임 생활과 글쓰기처럼.
그렇다. 이 글은 보드게임을 지원받아 써보는 나의 첫 글이다. <가지각새>는 최대 6인까지 플레이가 가능하고, 2인 플레이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특수 규칙도 마련되어 있다. 친구들과 함께 시범 플레이를 하고 나니 보드게임 모임에 가져가도 충분히 재미있게 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의 테마도 재밌다. 파티를 마친 전 세계의 새들을 무리 지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다. 테마가 확실하면 게임 설명도 조금 더 쉬워지는 느낌이 있다. 3월 모임 전까지 몇 번 더 플레이를 해보며 설명을 익숙하게 만들어 놓아야겠다. 기왕이면 새들 이름도 좀 더 익혀놓고.
*<가지각새> 보드게임은 코리아보드게임즈를 통해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