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과 함께 황금연휴를

by 배짱없는 베짱이

2025년 10월. 역대급 황금연휴로 몇 년 전부터 한 번씩 언급되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특히 직장인들이라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벌써 일 년 가까이 여행을 준비해서 이때를 틈타 해외로 나간 친구들의 여행 피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취직이 조금 더 빨랐더라면 나도 어딘가로 떠났을까? 사실 아직도 남미 정도 말고는 어딘가 간절히 떠나고픈 마음이 크지 않다. 꼭 그 때문 아니더라도 딱히 별다른 계획은 세우지 못했었다. 그저 올해 초까지 백수 생활을 하면서, 이 역대급 이벤트가 시작되기 전 취업을 하여 4대보험의 혜택 안예서 달달한 황금연휴를 누려야겠다는 계획 정도가 있었달까.


물론 해외로, 고향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결 조용해진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다행히 갈수록 나처럼 서울에 남아있는 친구들이 많기도 하고.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거리에 있는 본가에 하루 정도 다녀오고 나면 내 할 일은 다 끝난 셈이다.


이런 이야길 하고 나면 누군가는 친척들을 만나진 않느냐고 묻는다. 응.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신 뒤로 친척들을 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원래도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었기도 하고. 오히려 요새는 이웃사촌이라 하던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조금 더 자주 보고 조금 더 잦게 대소사를 나누는 친구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 추석엔 이런 이웃사촌이 하나 더 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맞다. 예상하는 바로 그들, 보드게임 클럽 멤버들이다.


연휴가 시작하는 금요일, 우리는 오랜만에 게임을 놓고 부암동에서 만났다. 보드게임 MT를 떠난 여름 이후 이렇게 밖에서 만난 건 처음이다. 모여서 커피 한 잔 마실때까진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이내 개이곤 꽤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말주변이 부족한 나는 속으로 또 조금, 서로 어색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지만 괜한 기우였다. 규칙과 승부에서 벗어나니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더욱 무궁무진했다. 다른 멤버들의 러닝, 프리다이빙 같은 취미에서부터 부암동의 산책 코스와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까지, 수다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우디99 멤버이기도 한 환은 여름 MT의 현수막에 이어 이번에는 같은 모양의 손수건을 준비해 왔다. 알록달록 게임 말처럼 서로 다른 색을 골라서 목에, 손목에, 가방에 그러 묶고 우리는 함께 성곽길을 걷고, 윤동주 문학관에서 청운도서관을 오가며 도심 속 숲길의 정취를 즐겼다. 낮부터 시작되어 밤까지 이어진 모임의 끝엔 다 함께 올해의 마지막 모임 일정을 확정 지었다.


언젠가 내게 게임은 쉽게 밖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취미였다. 특히 보드게임이라고 하면, 뭐랄까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곤 하는 컴퓨터 온라인 게임보다 마이너 한 느낌도 있고 (그게 뭔지 감을 잘 못 잡는달까) 나 스스로도 이걸 정말 취미라고 부를 만큼 좋아하거나 잘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그런 나의 취미를, 말하자면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 준 게 바로 이 사람들이다. 보드게임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궁금해서, 놀고 싶어서 와봤다고 말하더니 이제는 누구보다 신나게 함께 게임을 즐겨주는 사람들. 그들 덕에 난 이렇게 보드게임 일상을 글로도 쓰게 되고, 회사 면접 때도 당당하게 취미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직접 게임을 만들어 운영해 보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의도치 않게 게임을 하면서 서로의 몰라도 될 면까지 알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원래 규칙이라는 게 승부라는 게 그런 거니까.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더 쉽게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이 긴 연휴를 아무 데도 안 가고, 가끔 일도 하면서 조금은 아깝게 보내고 있지만 또 그렇게 아깝지만은 않다. 좋은 이웃사촌들이 생겨서 같다. 어제는 잠시 사무실에 다녀왔다가 저녁엔 집에서 혼자 새 게임의 룰북을 읽었다. 연휴가 끝나면 곧 있을 모임에서 멤버들에게 새 게임을 소개해주기 위해서다. 그제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크라임씬 제로를 정주행 했다. 너무 재밌다. 조만간 머더미스터리 모임도 각을 재봐야겠다. 어휴 이렇게 적고 보니 연휴에 즐길것도 할 일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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