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보게 신작 소개] 생츄어리 : 아크노바 게임
*본 리뷰는 코리아보드게임즈에서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하는 글입니다.
나는 동물원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들이 살아가기엔 좁은 우리, 때로는 비위생적인 환경, 보호나 사육보다는 동물을 볼거리로 취급하고 있다는 그런 수단적인 느낌이 강했달까.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원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뀐 계기,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보드게임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언젠가 소개한 적 있는, 동물원 테마의 보드게임 <아크노바> 말이다.
보통 보드게임을 소개하거나 분류하는 기준은 게임의 복잡성이나 장르성, 플레이어 간의 상호성 등이 되곤 한다. 아무튼 게임이기에, 비슷한 난이도나 잘 정돈되고 익숙한 규칙 등이 플레이를 더욱 원활하게 만들고 흥미를 돋우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더 이야기한다. 늘 강조하는 건 게임의 테마, 바로 게임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크노바>는 나에게 참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단지 많은 동물을 모으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만이 동물원 성공의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플레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가끔은 잘 키운 동물을 다시 야생에 풀어주기도 하고,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해 기부도 하고, 동물들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연구와 활동도 병행해야 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활동들을 적절히 해 나갈 때 게임의 승리에도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
동물원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보여주는 게임이라니, 감탄도 컸지만 조금 지나서는 고민도 생겼다. 보드게임을 즐길 때 게임 속의 이야기도 좋지만 사실상 플레이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앞서 말했던 게임의 복잡성이나 장르성이다. 그런데 왜, 늘, 재미있고, 테마가 잘 구현되었고, 스토리가 정교할수록, 게임은 어려워지는 걸까.
내가 <아크노바>를 처음 배운 날, 게임의 룰 설명을 듣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그것도 <아크노바>를 정말 잘하는 친구가 쉬지 않고 랩 같은 속도로 잘 설명해 줘서 겨우 30분 안에 마칠 수 있었다. 플레이하는 중에는 맵의 특징이라든가, 전체 카드 속에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아직 숙지하지 못해 내 차례가 올 때마다 진땀 흘려가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곤 했다. 사실 아직도 <아크노바>는 누군가에게 게임을 설명해 준 적이 없고, 설명할 엄두조차 안 낸다. 이건 나에게나 동물원 게임이지, 많은 보드게이머들에겐 웨이트 3점대 후반의 '명작 전략 게임'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런 게임을, 게임의 이야기가 좋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같이 하자고 권할 수 있단 말인가.
서두가 참 길었다. 오늘 정말 소개하려던 게임의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생츄어리>. 쉽게 말하면 <아크노바>의 쉬운 버전 게임이 새롭게 출시된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게임 소개 영상을 먼저 봤다. 구성부터 플레이 방식까지 한결 가벼워졌는데, 어쩌면 내가 <아크노바>를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의심도 조금 든다. 그것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생츄어리> 소개가 일단 <아크노바>를 안다는 기반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당장 테스트에 들어갔다. 마침 연휴도 길겠다 친구 둘을 불러 판을 펼쳤다. <아크노바>에서는 동물원에 우리를 짓는 것과 동물을 데려와 넣는 것이 서로 다른 행동으로 분리되어 있어 좀 더 전략적이었는데, <생츄어리>에서는 일단 동물을 데려오면 우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물론 다른 식의 제약 요소들이 있지만) 건물은 조건만 맞으면 추가 행동으로 설치가 가능하고, 보호 프로젝트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별도의 점수로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면 내 친구들이 아니다. 설명을 못 알아듣고,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도 육각형 타일을 열심히 채워나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특하다. 생각해 보면 <아크노바>도 굳이 분류하자면 벽게임. 타인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높지 않아 마치 벽을 쳐놓은 듯 나는 나만의 세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까에 집중하기 좋은 편이다. <생츄어리>도 타일을 가져가는 순서에 따라 상호작용은 있지만 그 정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서 마지 퍼즐을 맞추듯이, 아이콘을 모으듯이, 미션을 달성하는 마음으로 집중하며 하기 좋다.
처음 <아크노바>를 접했을 때,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영장류 카드에 꽂혀 (심지어 보호 미션도 아니었다.) 다채로운 영장류가 모여있는, 널찍 널찍한 우리가 놓인 동물원을 완성해 놓고는 꽤 만족스러워했다. (물론 게임에서는 꼴찌 했다.) 한편 이번 <생츄어리>에는 커플 동물들이 있다. 같은 이름의 암컷과 수컷 동물을 붙여 놓으면 보너스 점수를 받는 건데, 이번엔 친구 한 녀석이 거기에 꽂혀 짝 찾기에 매달렸다. 그리고 이번엔 그 녀석이 꼴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는 눈치다. 한 번쯤 자기가 만들고 싶던, 그런 동물원을 내 친구도 그 판 위에서 펼쳐보았던 것 아닐까.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녀석이 꼴찌였다. 하지만 아무려면 뭐 어때다. 가끔은 이기기도 하고, 꼴찌도 하고, 그래도 또 도전할 수 있고, 얼마든 다시 할 수 있다는 게 바로 게임의 매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