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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ug 08. 2018

25. 자연은 늘 옳다, 이과수 폭포

2017.5.31.~6.1.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브라질

여행지로서 남미가 선호되는 이유 중 빠지지 않고 꼽히는 것이 다른 곳에선 경험하기 힘든 장엄한 자연에 대한 것이다. 자연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인정받는 곳이라면 이과수 폭포를 빼놓을 수 없겠다. 세계 3대 폭포로도 꼽히는 이과수 폭포는 면적이 자그마치 여의도의 630배라는데 그 폭은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의 두 배에 이르고 낙차도 더 크다고 한다.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과 함께 남미에 오면 꼭 보아야 할 3대 꼭짓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명과 자연. 여행지를 정할 때 무엇을 선호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두 말없이 문명을 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이 좋고 도시가 좋다는 사람이 어쩌다 이곳으로 떠나왔냐는 농담 섞인 타박을 받기도 했을 정도로 남미는 말하자면 문명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곳이었다. 세계 최장의 안데스 산맥, 가장 건조하고 선명한 아타카마 사막, 지구의 허파 아마존, 생태계의 보고 갈라파고스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펼쳐지는 빙하, 그리고 이과수 폭포처럼.

아무렴 산맥도 사막도 말하자면 마침 가는 길에 있으니 들렸다는 말이 내게는 더 잘 어울릴 테다. 그건 이과수 폭포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이 큰 기대 없이 향했지만 신기하게도 늘, 압도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짜릿한 전율을 가져다주는 것은 결국 자연 쪽이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에 있는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한참 북쪽에 있다. 교통편으로는 비행기도 있었지만 계획이 없고 시간이 많았던 우리는 저렴하지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버스 길을 택했다. 버스에서 자고 먹고 자고 먹고 하는 동안 창문 밖 풍경이 천천히 변했고 날씨는 조금씩 무더워졌다. 목적지인 푸에르토 이과수(Puerto Iguazú) 마을은 작고 한적하고 습하게 더운 동네였다.  

먼저 아르헨티나 쪽의 이과수 폭포를 구경하고 다음 날 브라질로 넘어가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를 보기로 계획을 짰다. 사실 이건 꽤나 깊은 고민의 결과였다. 같은 이과수인데 굳이 돈과 시간을 2배로 들여가며 양쪽을 다 보아야 할까 라든가, 굳이 둘 중 한 곳을 선택한다면 어디를 가겠냐는 질문 등이 여행자 커뮤니티 같은 것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돌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우리의 선택은 옳았던 것 같다.  


우거진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이과수 폭포.
아침부터 계속 내리던 비때문인지 불어난 흙탕물의 소용돌이는 더 거세게 느껴졌다.
폭포를 향해 돌진하는 보트!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는 가깝다. 면적으로는 브라질보다 작지만 전체 폭포 줄기의 2/3를 소유하고 있다더니, 어디에서도 더 폭포를 가깝게 느낄 수가 있다.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도 나타나지 않던 폭포는 알고 보니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나무들 바로 너머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폭포를 향해 깎아지른 등선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내 발 밑은 폭포가 시작되는 물줄기의 꼭대기다. 소용돌이쳐 내려가는 물줄기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이곳은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닌 것만 같다.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가 우르르 쾅쾅 천둥처럼 울리며 청각까지 다 삼켜버렸다.  

백미는 이과수 폭포의 물의 절반 가량이 쏟아져 내린다는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 악마의 목구멍, 아니 지구의 목구멍이라 불러도 어울릴 것 같은 이곳은 1년 내내 비가 내리는 곳이다. 실은 비가 아니라 끝도 없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에서 튀어나오는 물보라다. 그 물보라가 어찌나 센지 폭풍우를 뚫고 운전하는 자동차의 앞유리처럼 시야는 가만히 있어도 뿌예지고 우산과 우비 속으로 온몸은 홀딱 젖어버렸다. 폭포에서 쏟아져내린 물이 이내 온순해져 도착한 강가에서는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향해 돌진하는 보트를 탈 수 있다. 추위와 공포에 덜덜 떨면서도, 한 번만 더 저 폭포 아래에 다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모순적인 마음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몰랐다.


그 넓고 많은 폭포 줄기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브라질의 이과수 국립공원.
거칠게 쏟아져내리는 물줄기.
나무 데크를 따라 소용돌이 치는 강물의 중심부까지 걸을 수 있다.
저 나무 데크 위를 걷는 동안 왠지 보트를 타고 폭포로 돌진하던 순간보다 더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온몸으로 흠뻑 젖어들었다면 이젠 두 눈으로 그 장관을 즐겨볼 시간.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쪽에서도 투어로 다녀올 수 있지만 우리는 아예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마을인 포스 두 이과수(Foz du Iguaçu)로 숙소를 옮겼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모두 이과수 폭포를 포함한 인근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고 있는데, 아르헨티나 쪽이 밀림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브라질은 말 그대로 잘 정돈해 놓은 국립공원 같은 느낌이 있다.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는 숨기는 것이 없다. 시작에서부터 그 장엄한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처럼 손에 잡히는 느낌은 없지만 폭포를 따라 쭉 걷다 보면 폭포의 세세한 모습을 다 담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왜일까 가만히 그 풍경을 바라보는데 그 전날 보트를 타고 폭포로 돌진하던 그 순간보다 더 큰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코스, 사방에서 쏟아지는 폭포수가 합쳐지며 소용돌이치는 강물 위에는 전망대와 중심부까지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데크를 걸으며 사실은 지구의 모든 물이 다 여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그 모습이 얼마나 거대하고 거대했는지 절대 상상할 수 없을거다.



관광지로선 보다 시설도 잘 갖추어 있고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브라질 쪽 이과수가 관광객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난 여행자들의 의견으로는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가 더 좋다는 평이 우세했다. 그러나 두 군데를 다 돌아보고 난 지금도 난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가 참 어렵다. 두 군데를 모두 보아야 비로소 이과수 폭포를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과수 폭포를 보고 온 뒤, 오랜만에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누가 뭐래도 자극이 되는 곳이 있다. 백이면 백 마음을 빼앗기고 말 그런 곳이 있다. 좀 뻔하게 느껴져 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모두가 옳다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지나가는 길에 들린 자연으로부터 다시 한번 짜릿짜릿해지는 기분, 또다시 발걸음을 옮길 원동력을 얻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과수 폭포가기
푸에르토 이과수는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브라질로 향하는 버스, 이과수 국립공원 왕복 버스가 모두 있고, 국립공언 입장료도 미리 구매할 수 있으니 알아두면 편하다. 2017년 당시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는 왕복 150페소, 입장료 500페소에 보트 투어는 450페소였다.
지금 새로 검색해보니 2018년 5월 기준으로 버스는 편도 85페소, 입장료 600페소, 보트투어 750페소라는 정보가 있다. 브라질쪽에선 아직 변동이 없는 모양인데 역시 아르헨티나, 그 사이에 또 올랐다. 그래도 페소 가치 떨어진 폭을 보면 지금이 더 저렴하게 다녀올 수 기회인 것 겉기도 하고... 브라질쪽 이과수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충분히 투어로 다녀올 수 있으니, 간다면 기왕 간 것 꼭 두군데  모두 보고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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