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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ug 11. 2018

26. 이곳은 ‘평화유지군이 상주하는 슬럼가’!?

2017.6.2. 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D +116)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 한 때 브라질의 수도였자 상파울루에 이어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나폴리, 시드니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곳. 아름다운 해변과 도시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예수상, 산과 바다 사이로 펼쳐진 아름다운 경관은 유네스코도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해안을 따라 쭉 뻗은 거리에는 맨 살을 드러낸 하얗고 검은 피부의 외국인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녔고 해안가에는 키 큰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을 뒤로한 채 택시는 끝도 없이 꼬불꼬불 어두워진 골목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어중띤 비탈길 중간에 멈춰 서더니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직접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사방에서 검은 피부의 비쩍 마른 아이들이 튀어나와 배고프다, 돈을 달라, 고 외쳤다. 귓가엔 더 이상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평화유지군이 상주하는 슬럼가. 숙박 예약 사이트에 적혀있던 '티키 비앤비(TIKI BnB)'에 대한 수식어다. 바닷가와 멀지 않은 위치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보고 골랐던 곳인데, 그 수식어가 그냥 수식어가 아니고 진짜 그런 곳이었을 줄이야.  

3개월이 넘는 남미 여행길에서 호스텔 밖을 나가기 두렵다는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카메라나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 손 채로 훔쳐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는 바로 이런 곳을 위해 존재하던 말 아닐까. 혼자서 길을 나서면 길을 잃는 건 물론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 소지품을 다 뺏길 것 같았고, 호스텔 문 앞에 달라붙어 쉬는 시간도 없이 돈과 먹을 것을 달라는 아이들에게 내가 먹혀버릴 것만 같다. 도대체 평화유지군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건지 코빼기도 비슷한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 안에서 꼼짝 않고 쉬고 싶었지만 저녁을 먹기 위해선 또다시 어둑해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쭈뼛거리며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녹여준 건 뜻밖의 감자튀김과 치즈볼을 팔던 작은 가게의 아저씨였다.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괜찮다고 해도 시식이라며 자꾸 건네주는 푸근한 웃음과 후한 인심에 이것저것 많이도 사버렸다. 입안에 달고 말랑말랑한 것이 들어가니 그제야 이 곳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꼬불꼬불 가파른 언덕을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티키 비앤비.
호스텔 가까운 곳의 풍경들.
호스텔의 옥상 주방에서 바라보는 풍경. 산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들.
숙소를 나와 한참 골목을 내려가던 길에 찍은 사진.


아이들은 그래 봤자 아이들이었고, 동네 주민들은 여전히 여행자인 우리를 배려하는 듯했다. 골목 중턱 가게의 청년들도, 골목에서 마주치는 어른들도, 과장된 손짓과 뭔가 조심하라는 뉘앙스의 경고 같은 말을 건넸지만 실제론 한 번도 걱정할 만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일행 중 말도 잘하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많은 M은 티키 비앤비에 머무는 동안 우리를 그렇게도 괴롭혔던 동네 아이들과도 친해진 모양이었다.  

숙소는 무엇보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참 좋은 곳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의 꼭대기에는 말하자면 루프탑으로 된 주방과 식당이었는데, 사방이 트여있는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풍경은 그 유명한 예수상에서 내려다보는 모습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매일같이 그 배경을 벗 삼아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맥주를 한 잔 하고. 아, 그때 불어오던 바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옥상 벽 너머로는 산을 따라 줄지어 올라오는 집들의 불빛이 반짝였고, 여기야 말로 흥 많은 나라 브라질이라는 걸 일깨워주려는 듯 밤새도록 멀리에서 그리고 가까이서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 모든 복작거림과 삶의 소리 너머로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에는 아지랑이 같은 불빛이 넘실거렸다.

밤에는 그렇게 호스텔의 옥상 주방에서 요리를 해 먹으며 감상에 빠졌다면 낮에는 산을 내려가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았다. 그 유명한 코파카바나 해변, 이파네마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고 바다에 몸을 담그는 건 하면서도 꿈만 같았다. 역시나 비싼 물가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을 수는 없었지만 바닷가를 돌아다니는 행상들로부터 달콤 고소 짭조름한 새우꼬치, 새콤 달콤한 칵테일 까이삐리냐는 맘껏 사 먹을 수 있었으니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자였다.  


티키 비앤비의 옥상 주방에서 내려다보는 야경.


사실 브라질은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로 언어가 다른 데다 워낙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가지 않으려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 남미에서 만난 동행들과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함께 이곳까지 와버렸다. 혼자였다면 그리고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절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  

전 세계인들이 꿈꾸는 휴양지인 코파카바나 해변이 눈앞에 있어서였을까, 오랜만에 제대로 바다, 한껏 더워진 날씨 때문일까, 철도 없이 그저 그 순간엔 모든 것이 낭만적이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저녁이 되면 불도 잘 안 들어오는 좁고 가파른 골목길, 늘 새벽까지 잠도 못 자게 쿵짝 쿵짝 울려 퍼지던 음악, 어떤 날엔 호스텔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들러붙어 먹을 것이나 돈을 달라던 아이들, 정말 답답했을 순간들이 많기도 했는데. 현지인들의 삶이 녹아있는 거리, 바람결에 실려오는 낭만적인 음악, 여행을 여행답게 만들어준 아이들, 그때는 마냥 그렇게 여기며 즐거워했으니 말이다. 바로 이런 게 여행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 바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이어 두 번째로, 제대로는 처음으로 남미에서 바라본 대서양이었다. 쏴아아 쏴아아 하염없이를 흔들리던 그 파도를 바라보던 낮과 밤이 더 잊히지 않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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