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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ug 25. 2018

30. 나 왜 그랬을까, 2번째 볼리비아

2017.6.10. 비아몬테스-따리하, 볼리비아(D +124)

내가 왜 그 고생을, 그 추위를 잊고 있었지? 창문 틈으로 칼바람이 새어 나오는 버스를 타고 15시간, 한 새벽에 잠에서 깨어 짐을 풀었다 다시 싸기를 3번,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떨궈져 다시 콜렉티보를 찾아 타고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5시간, 하필 도착한 호스텔에선 나만 와이파이가 안 잡혀 약 40시간 만에 확인하는 인터넷. 그래도 예상했던 30시간보다 7시간이나 단축했다. 그렇게 왔다. 기어코 다시 왔다. 볼리비아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반쯤이었다. 어둠과 함께 또다시 찾아오는 추위. 먹다 남은 피자를 호스텔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덥혀왔는데 다시 차게 식어있었다. 따뜻한 코코아를 사서 대합실 의자에 앉아 식은 피자와 함께 먹었다. 그날 밤 추위와의 사투를 생각하면 그때라도 미리 마셔둔 그 따뜻한 코코아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우리가 탔던 파라과이 아순시온-볼리비아 산타크루즈행 버스와 그 안의 모습. 다시 봐도 거칠다.
가지고 탄 배낭은 물론 짐칸에 있던 캐리어까지 모두 꺼내어 열었다 닫았다 하는 짐검사를 통 틀어 세번이나 했다.
트렁크까지 다 열어보라며 짐 검사를 하던 세관은 미국 달러화가 그려진 저 트럼프 카드를 보곤 부자가 여기에 돈을 숨겨왔다며 농을 쳤다.


낡은 1층짜리 버스. 캐리어는 짐칸에 실었지만 자리에 함께 들고 탄 배낭은 무릎 위에 올려 안았다. 평소엔 발 아래 의자 밑에 내려놓지만, 이번만큼은 바닥에 내려놓기엔 차마 바닥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다. 꽉 닫히지 않는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나마 안고 탄 배낭이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줄 줄이야 감탄했지만 얼마 안가 찌릿찌릿 무릎이 저려왔다. 이 동네는 시종일관 인터넷이 느리더니 심지어 업데이트 중간에 멈춰버린 지도 앱 맵스미 덕분에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가 없었다. 좁은 좌석, 불편한 자세, 피할 수 없는 추위. 아, 볼리비아는 이런 곳이었지, 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더라니.

꿈뻑꿈뻑, 몽롱한 상태로 자는 듯 마는 듯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아직 국경도 아닌 것 같은데 짐 검사를 한다고 사람을 깨우더니 짐칸에 있던 캐리어까지 가지고 있는 온 가방을 죄다 꺼내서 열어 보여야 했다. 새벽녘에야 도착한 국경에서도 두 번이나 다시 짐을 풀었다가 쌌다. 남의 속도 모르고 짐을 검사하던 세관 직원은 미국 달러화가 그려진 게임용 트럼프 카드를 내 캐리어에서 찾아내곤 부자가 달러를 숨겨 왔다고 농을 쳤다.


이놈의 볼리비아. 애증의 볼리비아. 약 두 달 전 볼리비아에서 겪었던 잊고 있던 고통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도대체 왜 이곳에 다시 온 걸까, 아순시온의 호스텔에서 만났던 사이먼의 권유대로 비싸더라도 편하게 아르헨티나를 통과할 걸, 잠시 후회를 하기도 했더랬다.

심지어 아순시온에서는 우리의 목적지인 볼리비아의 따리하(Tarija)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따리하에 가려거든 산타크루즈(Santa Cruz) 행 버스를 탄 뒤 중간에 비아몬테스(Villa Montes)라는 지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날이 밝아오며 추위는 가셨고 심지어 조금씩 더워오기 시작했다. 비아몬테스에서 내려야 한다고 말하자 버스는 터미널도 아닌 황량한 벌판, 사방에는 도로밖에 없는 곳에다 우리를 덩그러니 내려줬다. 어느새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비아몬테스.  버스는 이런 황량한 길가에 우리를 내려주고 그대로 갈 길을 가버렸다.
한창 낮시간인데 사람도, 버스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비아몬테스의 터미널.


짐을 들고 낑낑 거리며 길을 건너다가 걷기를 포기한 뒤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이 도시는 한낮인데도 인적이 없더라니, 터미널에도 문을 연 버스 회사가 안 보인다. 터미널 주변을 돌며 겨우 따리하 행 콜렉티보를 찾았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다행히 제일 가까운 시간이었던 2시 차의 손님이 취소를 하는 바람에 빈자리가 나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다시 여정에 오를 수 있었다. 이번엔 꼬불꼬불 비포장도로를, 그것도 창문도 닫지 않고 달리는 바람에 온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 썼다. 다시 한번 애증의 볼리비아. 그러게 도대체 왜 이곳에 다시 온 걸까.

그나마 6시간이 걸린다던 콜렉티보는 1시간 단축한 저녁 7시쯤 따리하 터미널에 도착했다. 또다시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그런데 호스텔도 한 번에 찾지 못해 택시 아저씨와 때아닌 동네 투어를 해야 했다. 이 동네는 와이너리 투어가 유명해, 저쪽에 광장이 있어, 여기도 가볼 만한 곳이지. 마치 힘든 길로만 골라서 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돌고 돌아서 또다시 어둠이 내린 뒤에야 새로운 숙소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지난밤 버스에서 저녁으로 나왔지만 안 먹고 가방에 박아놨던 식사를 그제야 꺼냈다. 열어보니 닭고기 파스타다. 전자렌지에 돌리고 우유에 탄 마카도 꿀을 섞어서 데웠다. 넓고 아늑한 주방에서의 여유로운 저녁식사.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샤워는 얼마나 좋던지!


다시 도착한 볼리비아에서의 첫 식사. 전날 버스에서 준 파스타와 렌지에 덥힌 우유인데도 어찌나 맛있던지.
다음날 아침, 행복했던 호스텔의 조식. 이 호스텔은 따리하에서도 조식이 맛있고 푸짐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순시온에서 따리하까지 모두들 30시간은 걸린다고 했었는데, 계산해보니 대략 23시간 만이었다. 역시 난 운이 좋아. 게다가 이 도시는 볼리비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데다, 호스텔은 그런 따리하에서도 조식이 가장 잘 나오고 맛있기로 소문난 곳. 그러게, 여기를 다시 오긴 왜 다시 왔겠어. 고생 끝에 또 이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잖아. 밤이라선지 꽤나 냉기가 도는 숙소였지만 이불이 두꺼워 침대 속은 따뜻했다. 그동안 너무 달려왔어. 며칠은 이곳에서 푹 쉬기로 했다. 감은 머리를 다 말리지 못한 채로 누웠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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