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또 Mar 22. 2023

헤어밴드의 의미

헤어밴드의 의미

축구를 하다 보니 다들 나름의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스포츠 헤어밴드. 호나우지 뉴(호나우딩요)의 헤어밴드가 익숙했던 나는 선수들 말고 일반 사람들이 스포츠 헤어밴드를 하는 걸 많이 보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헤어밴드를 한 회원들을 보면 괜히 있어 보이고, 더욱 스포티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편하진 않을까? 버티지 못하고 머리에서 튕겨 나오지 않을까? 별 거 아닐 수 있는 헤어밴드인데 나로선 굉장한 호기심이 생겼다. 활용도 면에서 호기심이 생겼지만 마음 한구석엔 뭔가 있어 보이고 스포티해 보이는 그 느낌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헤어밴드를 하면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리는 불편함 없이 거침없는 달리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달까. 


그냥 헤어밴드를 사서 해보면 될 것인데, 풋살화 만큼은 아니지만 해보지 않았던 것이라 그런지 선뜻 바로 사지지가 않았다. 마음 먹고 마트에 갔을 땐 또 아쉽게도 헤어밴드가 없었다. 


이 말을 친구들 모임에서 꺼냈다. ‘헤어밴드 살까 말까’.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내가 축구를 시작했다는 것이 꽤 신선한 소식이었다. 그랬다. 우린 뭘 도전하는 게 한창 버거워질 30대 중반이었다. 우리 엄마는 돌이켜 보면 그때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라 하던데.. 나와 너, 우리는 30대 중반이 넘어 가정을 이루고, 사회 생활을 하고, 이것 저것 하려니 그게 참 버거웠다.


20대 때는 어땠었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에너지 넘치고 싱그러웠던 10대, 20대의 내가 전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소소한 도전들이 이렇게나 크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기회가 없었을까,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과는 또 달랐을까?


아무튼 친구들은 내가 축구를 시작했다는 것에 흥미로워 했고, 그러면서도 ‘너니까 가능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바깥에서의 나는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활동적이다. 유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되니 나 역시 변화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질 수야 없지만 그래도 나이도 더 들고, 가정도 생기고, 아기까지 생기니 나도 한 뼘 자라 어른이 된 것일 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조금 더 몸을 사리게 되기도 한 것 같다. 나를 그대로 노출시키며 모든 것에 마음을 주던 어린 시절의 나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크고 작은 풍파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터득하며 안정된 삶으로 들어가려 하다 보니 내 나름대로의 방어 기제가 생기고, 큰 변화를 제법 무서워하게 된 것 같다.


과대 해석이라고? 그건 정말 모르는 말이다.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쫙 빠지는데 내게 주어진 상황 외에 내가 움직여서 더 신경 쓰고, 지켜야할 것이 많은 상황이 되면 사람은 참 소극적으로 변한다. 또 다른 도전으로 내 에너지를 쓰고 일상의 변화를 주는 것이 사실 쉽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다.


제법 많은 친구들이 이에 동의했다. 운동을 해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것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아 성찰을 해야 한다는 것도, 내 세상을 계속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도, 모두 알지만 쉽지가 않다.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 도전이 참 어려운 이유. 우리 다 알잖아요.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 헤어지기 전 잠깐 백화점 구경을 했다. 일명 ‘애데렐라’. 저마다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와 얼른 볼 거 보고, 살 거 사고 헤어지자 하던 참이었다. 그때 내 친구가 스포츠 매장에 들어갔다. 그러더니 헤어밴드를 발견하고는 당장 구매하라고 했다. 내가 또 고민하자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쿨하게 결제까지 해줬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선물에 놀라고 고마웠다. 동시에 난 알고 있었다. 단순히 내 말을 기억해낸 친구의 선물이라고? 아니, 이건 응원의 의미였다. 같은 고민 속에서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우리가 결국 서로에게 하고 싶은 것은 응원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름의 큰 도전을 한 나를, 도전을 하고도 소소한 고민이 계속되는 나를 한 번의 결제, 아니 선물로 응원한 것이었다.


과대해석이라고? 그래도 좋다. 그 의미가 어쨌든 난 응원을 받았고, 힘이 났고, 그 헤어밴드는 지금도 내게 왠지 모를 자신감을 준다. 


이전 04화 체력아, 아 나의 체력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