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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Apr 11. 2023

그 넓은 운동장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큰 운동장을 여기저기 누비며 뛴 적이 있었나? 

축구를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을 여기저기 누비며 뛰었던 적이 있었던가? 체육시간, 운동장 한편에서 발야구를 하고 피구를 하고 소프트볼을 하고, 농구 슛을 배우고 했던 기억은 있다. 오래 달리기? 그나마 운동장 전체를 쓰긴 했지만 가장자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운동장 전체를 다 쓰는 스포츠를 한 적은? 그래, 없네. 


체육 시간이 아닌 때 운동장은 어땠나? 

점심 급식, 저녁 급식 먹고 남은 시간 배드민턴 치기 아니면 여고생들의 단골 산책 코스, 운동장 가장자리 걷기 정도? 학창 시절 운동장을 떠올려 보라 하면 축구하고 있는 남학생들이 먼저 떠오르네. 전체라고 할 수 없지만 사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스탠드에 앉아 축구하는 남학생들을 구경하거나 수다 떨고 있었던 것 같다. 체육 시간이 아닌 때 운동장 전체를 다 누볐던 기억은? 그래, 없네. 



축구하는 나를 지지해 주던 남편과 주말에 가끔 같이 축구 연습을 했다. 마침 친정집이 시청 근처라 시청 뒤편에 있는 작은 운동장에서 패스 연습도 하고, 함께 작은 골대에 골도 넣고 같이 뛰었다. 함께 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나보다 더 나은 신체적 조건을 갖춘 남편 상대하며 부아가 나기도 했다. 이건 어디서 오는 부아일까? 단순한 승부욕일까? 신체적 조건이 다름에서 느껴지는 한계 때문일까?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난 개발이야. 축구를 잘하는 편이 아니야. 그냥 어릴 때 친구들이랑 한 게 다야”. 그때 내 부아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 알았다. 그래, 운동장은 너희 거였지. 내 것이 아니었어. 그때 난 자유롭게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를 해본 적이 없어.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할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냥 그게 당연했어. 근데 지금 알았어. 10대 때의 내가 느끼지 못한 억울한 감정이 30대 중반이 돼서야, 이제야 용기를 짜내서 축구를 시작한 내가 돼서야 스멀스멀 올라왔던 거야. 


남편도 말했다. “남자애들 축구하고 있을 때 여자애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진짜 기억이 안 나네. 그러네..”. 남편은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딸이 있어서 더 감정이입을 했나? 내 딸은 그 넓은 운동장을 마음껏 누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딸로 키워야겠다고 같이 다짐했다. 


남녀 차별을 말하는 것이라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그저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 익숙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싶다. 그 넓은 운동장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왜 나는 그 넓은 운동장을 누비지 않았을까. 누가 못하게 막은 것도 아닌데, 왜 난 그 운동장을 모두 갖지 못했을까. 


그래서 난 지금 내 운동장을 넓히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누빌 거다. 그게 진짜 운동장이든, 혹은 직장이든, 가정이든, 내가 누비지 못할 운동장은 없다. 축구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다. 곧 내 삶이 그렇다. 이 운동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다. 운동장을 넓히고, 그 넓은 운동장을 난 누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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