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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Jul 17. 2023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맥주는?

운동하고 먹는 맥주 한잔. 그 시원한 맛 누가 모를까. 그 맥주 맛을 참 오래 모르고 살았다. 20대 때 운동은 체력 기르기보다 다이어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살면서 엄청난 다이어트를 한 적은 없지만 그냥 분위기상 다이어트를 입으로만 하던 시절.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다이어트가 주된 주제였던 그때. 운동은 살을 빼야 하니 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땐 운동 후 맥주의 맛을 몰랐다. 운동 후 술을 마시는 것은 마치 죄와 같은 느낌을 줬달까. 나름 술을 즐기던 시절이었음에도 운동 후 술은 마치 금기와도 같았다. 건강한 운동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 다이어트가 기저에 깔려 있다 보니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살찌는 것을 마시고 먹는다에 대한 죄책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축구를 하고 나선 달랐다. 운동의 맛을 알게 되고 건강과 내 몸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맥주 한잔도 좀 다르게 느껴졌다. 의학적으로 물론 술이 몸에 좋은 건 아니겠다만. 그래도 축구 후 우리만의 작은 뒷풀이는 가끔 하고 싶었다.


축구가 끝난 뒤 친구와 마시는 맥주 한잔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마실 수 있는 짜릿함이었다. 벌컥벌컥 들이킨 시원한 맥주가 내 목을 타고, 마치 온몸에 퍼져나간 듯 피를 싹 돌게 하는 느낌이었다.


“캬~” 맥주 CF를 찍는 줄 알았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이 시원함은 확실히 물을 마시는 것과는 달랐다. 나와 친구의 얼굴엔 웃음이 맴돌았고, 그저 기분이 좋았다. 축구로 살아난 내 몸의 감각을 맥주가 더욱 섬세하게 터치해 주는 듯했다. 


행복했다. 축구 후 맥주를 마실 수 있어서, 축구 후 함께 맥주를 마실 친구가 있어서, 축구를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축구를 할 용기가 생겨서, 축구를 할 수 있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돼서.


이 단순한 맥주 한잔으로 난 또 저 멀리 가있다. 맥주 한잔 그거 뭐라고, 운동 후 맥주 한잔 시원한 거 누가 모르냐고. 뭐 그렇게 과대 해석 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것이 참 많은 감각과 생각을 깨운다. 이 한잔으로 내 기분이, 내 상황이, 나 자신이 좋아지는 게 사실이니까. 


원래 행복에는 크기가 없다. 엄청난 성공과 부, 혹은 커다란 무언가가 내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지만 살아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조그만 것 하나가 내게 행복을 준다. 행복에 크고 작음은 없더라. 내가 좋으면 그게 행복이었다. 크기도 상관없더라. 그저 행복 자체가 내게 왔다.


그래서 난 이 맥주 한잔에서 행복을 찾았다. 더 자세히 말하면 축구 후 맥주 한잔에서. 내 실력이야 어찌 됐든 최선을 다해 뛴 그 순간의 달콤함, 이 달콤함을 더 적셔줄 한잔의 맥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내 안의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순간, 그게 내 행복이었다. 이때 마신 맥주가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맥주가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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