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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Jul 27. 2023

혼자서도 잘해요

친구와 재미있게 룰루랄라 축구 다니는 일이 익숙해지던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 함께 하던 친구와 축구를 하지 못하게 됐다. 친구가 원래 살던 곳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 친구가 원래 살던 곳은 해외였기 때문에 우린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냐” 함께 웃던 내 친구. “지금 심박수 180 넘었는데 생명에 지장 없는 거냐” 서로 거듭 확인했던 우리. 불나방 같이 뛰어다니다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라 교체를 반복했던 너와 나. 축구 후 맥주 한잔 ‘캬’ 즐기던 축구 메이트. 


시작과 과정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할 수 없음이 너무도 아쉬웠다. 시간은 흐르고 친구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붙잡고만 싶었다. 함께 뛰고 싶었고, 같이 즐기고 싶었다. 손 내밀고, 그 손을 잡고, 서로 이끌어주며 자존감 +1 하던 그간의 행복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친구는 내 소꿉친구이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어쨌든 초등학교 저학년즈음부터 함께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같이 서예 학원에 다니기도 했고, 가족끼리 알고 지내며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다른 중학교에 다니며 잠시 떨어져 있었지만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소꿉친구에서 지각 메이트가 됐다. 지각해서 부랴부랴 뛰어갈 때 어느새 내 옆에 친구도 뛰고 있었다.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안도했다. 둘이 돈을 합쳐 택시 타고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지각 메이트에서 같은 동아리도 하고, 노래방과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수도 없이 가며 학창 시절을 공유했다.


20대가 된 뒤에도 친구는 함께였다. 커피 맛을 아직 모르던 때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던 카페 마감 시간에 놀러 가 프레즐을 처음 얻어먹고 너무 맛있어 충격받았던 기억, 같이 우리 지역 첫 벼룩시장을 자원 활동으로 참여했던 기억 등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친구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건넸을 때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아직도 생각난다.


친구의 신혼집에 놀러 갔을 때도 떠오른다. 친구와 그의 남편에게 난 그 시절 남자친구였던 남편과의 연애사를 미주알고주알 얘기했었다. 두 사람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줬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의 사랑을 공감해 줬다. 


친구의 가족이 해외에 살게 되면서 아쉽게도 함께 하는 시간을 줄었었다. 그래도 마음만은 함께. 내가 만삭일 때 잠깐 한국에 들어온 친구는 두 살배기 딸을 안은 채 기차를 타고 나를 보러 와줬었다. 에너지 넘치는 두 살배기 딸을 잡으러 다닌 탓에 함께 이야기할 시간은 적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처럼 가까웠다. 연락은 뜸했지만 우린 가까웠다.


그러다 나도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됐다. 그런데 웬걸, 소꿉친구의 친정 부모님이 이사 가신 아파트였다. 심지어 친구는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한국에 들어와 친정집에서 살고 있었다. 우린 그렇게 다시 함께 했다. 친구의 딸은 5살, 내 딸은 4살. 두 딸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는 친자매 같은 사이가 됐고, 엄마들은 소꿉친구에서 축구 메이트가 됐다. 


육아 선배, 육아 동지가 된 친구가 먼저 축구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인생에 축구가 자리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언젠가 싸이월드가 다시 오픈한 날. 친구들과의 과거 사진을 보며 낄낄댔다. 그러다 친구의 사진에서 멈췄다. 2010년에 내가 올린 친구의 사진. 사진 제목은 ‘날 항상 지지해 주는 ㅇㅇ이’, 내용은 ‘우린 벌써 몇 년 친구니!’.


마음이 이상했다. 그때도 지금도 내 친구는 날 항상 지지해 줬구나. 10대에도, 20대에도, 30대에도. 항상 지지하고 서로를 응원했구나. 눈물이 살짝 났다. 친구의 존재에, 친구의 소중함에.


그런 친구가 더 이상 축구를 함께 할 수 없게 된다 하니 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축구뿐만이 아니었다. 마음의 거리가 이리 가까운데 몸의 거리가 떨어져 함께 하지 못할 시간들이 생긴다 하니 그게 또 속상했다. 같이 용기 내 축구를 하러 가고, 함께 숨을 헐떡이며 웃었던 그 시간들. 축구장을 오가며 나눴던 속 깊은 이야기들. 그런 시간들이 아쉽고 또 아쉬웠다.


축구 회원들과 꽤 친해졌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친구가 없으면 너무나 헛헛할 것 같았다. 친구가 떠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걱정은 더 커졌다. 하지만 날 잘 아는 친구는 말했다. 분명 넌 계속 잘 다닐 거라고. 친구는 반달눈을 웃어 보이며 호언장담했다. 웃겨, 정말. 네가 뭘 알아. 내 속상한 마음을 알아? 


그런데 반전. 맞다. 친구가 떠난 뒤에도 난 축구를 잘 다니고 있다. 친구와 함께 걸어가던 길을 혼자 걸어가고, 다른 회원들과 축구 후 맥주 한잔 기울이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거의 빠지지 않는다. 홀로 걸어와도 헛헛하지 않다.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그렇다. 혼자서도 잘한다.


친구 말이 맞았다. 나는, 우리는, 뭘 하든 혼자서도 잘한다. 함께 해서 좋은 것도 맞고, 혼자라도 잘할 수 있는 것도 맞다. 함께 하는 게 힘이 되고, 그 힘은 혼자서도 잘하게 한다. 축구는 그래서 재미있다. 함께 하는 즐거움과 내가 성장하는 뿌듯함이 공존한다. 혼자서 못하는 팀 스포츠. 그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성장한다.


느리지만 천천히, 힘들지만 꾸준히 해내고 있는 나와 너. 그게 축구가 아닐지라도. 우린 그렇게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한다. 잘하고 있고, 잘해나가고 있다. 나의 소중한 축구 메이트는 그걸 알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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