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또 Jul 17. 2023

축구 잘 못하는데요?

운동 이야기가 나올 때 축구를 한다고 하면 다들 ‘오’ 하는 반응이었다. 이와 동시에 나오는 반응은 ‘운동을 잘하나보다’였다. 사실 내가 하는 축구는 풋살장에서 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축구와는 또 다를 수 있다. 풋살과 축구는 엄연히 다르긴 하니까. 



하지만 뭐가 됐든 난 ‘오’ 반응에 걸맞은 실력을 갖고 있진 않았다. ‘운동을 잘하나보다’ 반응에 긍정의 답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의 운동 신경도 아니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을 통해 여자 축구 바람이 불긴 했지만 축구는 아직은 여자들이 한다고 하면 ‘오’ 반응이 나오는 운동이었다. 축구는 뭔가 운동 좀 해야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의 운동이라 생각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래서 더 축구해볼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다. 여자들이 축구를 취미로 하는 것, 그건 참 이색적인 것이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의 운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동작을 곧잘 따라 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숙지해 내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동작을 쉽게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기본, 스텝이 꼬여 자주 주춤했다. 일주일 뒤면 용어며 동작이며 까맣게 잊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스타일이었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다 보니 동작이 나름 몸에 익었고, 0.1%씩이라도 나아지고 있었다. 그 조금씩 나아가는 맛이 참 달았다. 안 되는 것 같다가 되기도 하고, 되는 것 같다가 안 되기도 하고. 그 과정들이 지루하지 않았다. 일단 하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재미있었다.


선생님과 회원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 아쉬워할 때면 박수로 격려해 줬고, 조금이라도 동작이 되면 환호해 줬다. 부끄러우면서도 그 반응이 참 큰 힘이 됐다. 이기려는 축구보단 즐기는 축구를 하려 했다. 승부욕보다 성취감이 더 자극됐다.


잘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 못 해도 그냥 하는 거였다. 그래서 배우러 가는 거고. 배우면 또 알게 되고, 잊더라도 또다시 배우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배우다 보면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진짜 할 수 있어지더라. 


주춤하는 사이 공도 뺏기고, 골도 못 넣었다. 배운 걸 써먹어 보려 해도 몸은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아쉬움일 뿐이더라. 일단 축구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저 내가 축구를 했다는 그 자체만 남는다. 못해서 졌다는 패배감과 이기겠다는 승부욕보다 내가 어찌 됐든 했다는 것, 하려고 움직였다는 것 그 자체가 성취감을 줬다.


그간 10대, 20대, 30대를 거치며 얼마나 많은 실패와 패배감을 느껴 왔는가. 무조건 성공만을 위해 달려온 것은 아니지만 실패 뒤에 남는 씁쓸함이 참으로 쓰라렸다. 지금도 이를 극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죽을 때까지 이걸 반복하고 느끼겠지.


하지만 축구를 하고 나서 알았다. 숱한 실패는 숱한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그 속에서 패배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게 내 도전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는 것을. 쓰라림을 오래 가져가기보다 내가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실패 없는 삶은 없고, 항상 웃는 삶도 없다. 그렇다면 그 실패 속에서, 웃음도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 잘하나 봐요?’라고 물었을 때 난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내가 내린 답은 ‘축구 잘 못하는데요?’이다. 그게 사실이고, 그게 나니까. 


축구를 하며 난 나를 인정하고 내 시도에 박수를 보내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난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뭐 대단한 거 하는 거 아니지만. 쓰라린 마음 달래주고, 도전에 박수 쳐주는 거, 그거 어려운 거 아니니까. 남도 아닌 나니까. 


이전 10화 헤딩의 아픈 기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