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또 Jul 28. 2023

초보도 슬럼프가 있나요?

인생엔 몇 번이고 슬럼프가 온다. 마냥 쉬운 건 없고, 더 잘하고 싶을 때 슬럼프는 더 세게 찾아온다. 고속도로처럼 쭉 뻗어나가고 싶지만 고속도로라고 마냥 뻥 뚫린 길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막 달리다가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인생의 슬럼프가 그렇다.


축구도 그랬다. 내게도 슬럼프가 왔다. 초보도 슬럼프가 있나요? 그냥 취미로 하는 건데 적당히 가볍게 하는 거 아니었나요? 당황스럽고 민망하지만 축구를 하며 슬럼프가 찾아왔다. 불나방처럼 뛰는 시기를 지나고, 몸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더 잘하고 싶었고,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슬럼프가 찾아왔다. 실력이 좋든 나쁘든, 초보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없을 때, 뭔가 좀 나아진 것 같은데 그게 아닐 때, 다른 사람들은 실력이 쑥쑥 향상되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을 때. 슬럼프가 슬슬 찾아왔다.  


사실 슬럼프라는 말은 좀 거창한 것 같았다. 슬럼프를 겪는다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면서 뭘 또 그렇게 슬럼프를 겪나 싶었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 슬럼프라는 말을 입밖에 내진 않았다.


코치님은 항상 기본기 수업 때 했던 것들을 경기할 때 써보라고 했다. 드리블도 해보고, 컨트롤도 해보고 마냥 뻥뻥 차지 말고, 뭔가 써먹어볼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말이 쉽지, 경기할 때 도무지 기본기 기술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무엇을 쓰라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몸이 자연스럽게 기억하려나? 싶지만 내 몸의 기억력은 참 좋지 못한 것만 같았다.


경기를 하고 나면 너무 재밌던 것도 슬럼프가 오니 달라졌다. 재미는 분명 있는데 아쉬움이 더 컸다. 왜 이렇게 안 되는지 내가 답답했다. 연습량이 많지 않다 하더라도 이젠 좀 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 


골은커녕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것만 같았다. 체력도 그대로 저질 같았고, 발바닥은 땅에 붙은 건지 떼기가 힘들었다. 땅에 발이 푹푹 박히는 것만 같았고, 몸은 쿵쿵 더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른 회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의욕은 앞서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괴감이 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공감과 위로가 이어졌다. 비슷하게 슬럼프를 겪으니 내 몸에 느끼는 게 똑같았다. ‘너는 잘하는 것 같은데 왜 그러냐’라는 말도 서로에게 했다. 나만 느끼는 게 맞았나 보다.


무언가에 의욕이 생기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 그러다 보니 부침을 느끼고 슬럼프도 왔던 거다. 그런데 어쩌랴. 그게 나인 것을. 결국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어떤 일에 있어 부침을 겪을 때, 마냥 누가 도와주기를 바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결국 내 앞에 놓인 과제를 푸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도 30여 년 살았으니 모를 리 없었다. 특히 축구는 더 그랬다. 내가 내 몸을 써서 하는 건데 누구를 탓하고 누구의 도움을 받으랴. 그저 내가 연습하고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슬럼프는 내가 극복해야 한다. 초보라 할지라도. 민망함을 느끼기보단 슬럼프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극복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고, 극복했을 때 내가 성장할 수 있다.


속도는 상관없다. 그저 그 슬럼프의 길을 지날 때 모든 걸 놓지만 않으면 된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는 건 내 선택이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재미를 느낀 일이라면 이른 포기는 아쉽다. 바닥을 쳐야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슬럼프를 겪고 극복해야 그 위의 세상도 볼 수 있다. 그게 축구든, 무엇이든.


초보도 슬럼프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극복의 연속, 그 안에 성장한 내가 있더군요. 

이전 12화 속출하는 부상자들 속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