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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Jun 08. 2023

헤딩의 아픈 기억

사람은 자고로 의욕을 조심해야 한다. 없던 의욕이 생기면 일단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자주 생기는 의욕이 아닐 시 더 그렇다. 오랜만에 생긴 의욕은 모든 게 내 마음먹는 대로 될 것만 같다. 


당연히 의욕은 나쁜 게 아니다. 원동력이 되고, 기동력이 되고, 그야말로 내 힘 력(力)이 된다는 것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조심해야 하냐고? 자칫 아픈 기억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넘치는 의욕은 자칫 아픔의 복선일 수 있다.



내겐 헤딩이 그랬다. 축구를 시작하고, 숨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의욕이 생겼다.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할 수 있는 선에서 뭐든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끌고 운동장으로 갔다. 맹훈련은 아니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 의욕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전해졌다. 나보다 더 의욕이 과했던 남편은 내게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헤.딩. 둘 다 까불고 싶은 의욕이 맥시멈이 된 상태. 거침없는 헤딩 훈련이 시작됐다. 기본 훈련 공부 없이. 갑자기 그렇게. 의욕의 복선이 깔아졌고, 난 의욕이라는 놈의 큰 그림에 덜컥 걸려들었다.


그래, 축구선수들은 밥 먹듯이 하는 게 헤딩이잖아. 높이 뛰어서 할 수는 없더라도 날아오는 공에 그저 머리를 맞히면 되는 거 아닐까? (안일한 생각.. 안 될 말씀.. 제발 그만…) 퍽! 결국 날아오는 공은 내 정수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너무도 정직하게 내 머리로 퍽! 공을 받았다.


뒷목이 찌릿했다. 남편이 공을 세게 던졌다고 생각해 소리를 꽥 질렀다. 남편은 “그래도 머리로 맞히긴 하네?”라며 초보임에도 잘 받았다는 표정. 남편에게 아직 남아 있는 의욕이 나를 또 자극했다. 맞을 때 잠깐 뒷목이 찌릿한 거겠지.. 괜찮겠지..? 순간의 아픔만 있었던 게 문제였을까. 그 후로도 계속 헤딩을 해보려 했다.


얼추 헤딩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아니나 다를까 뭔가 목이 불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은 아픔으로, 아픔은 어깨, 날개뼈, 등까지 퍼졌다. 그렇다. 담이 걸렸다. 순간 날아와 정수리를 퍽 찍혔으니 뒷목이 그대로 찌릿 자극을 받은 거다.


결국 약을 먹었다. 근육 이완제를 먹으니 속이 울렁거렸다. 정형외과에 갔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단순 담이니 천만다행. 하지만 옆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내 생애 최고의 담을 헤딩이, 내 무지함이, 넘친 의욕이 선사해 줬다.


마침 다음 축구 수업은 재활 센터의 무료 체험이었다. 재활 전문 선생님과 상담하니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라고 했다. 축구 선생님에게도 물었다. 헤딩으로 이렇게 됐다고. 선생님이 헤딩하는 법을 설명해 줬다. 나는 제대로 잘못된 헤딩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몸이 아프니 그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괜히 남편도 원망해 보고, 나 자신도 탓했다. 역대급 담이 날 괴롭게 했다. 헤딩의 아픈 기억은 섣불리 생겨버린 과욕을 진정시켰다. 


사람은 자고로 의욕을 조심해야 한다. 과욕으로 번질 수 있으니까. 축구만 그렇겠나. 무슨 일이든 의욕이 지나치면 눈앞이 흐려진다. 평소에 잘 보이던 것도 더 보이지 않는다. 과욕은 그렇게 내 시야와 판단력을 좁아지게 만들 수 있다. 


헤딩의 아픈 기억으로 참 많이도 간다고? 그만큼 잘못된 헤딩은, 지나친 과욕은 내게 너무 큰 시련을 안겼다. 엄청나게 오래 간 담만큼이나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내게 큰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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