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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Jul 05. 2023

달콤한 골의 맛, 그 후

코치님이 말하셨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지지고 볶고 해도 일단 골을 넣자고. 그렇다. 축구는 결국 골을 넣어야 재미있다. 그게 내 골이라면 더욱더.


내가 골을 넣을 수 있을까? 넣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참 안 들어간다. 축구장보다 작은 풋살장이거늘, 5대 5로 뛰는 경기이거늘. 골대가 축구장 골대보다 작아서라고 위안 삼아 볼까? 그러기엔 분명 골은 터진다.


처음엔 골을 넣고 싶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경기에 바로 뛰라는 게 의아했다. 냅다 뛰었다. 공이 내 앞으로 오면 그저 뻥뻥 찼다. “뻥뻥 차지 마세요” 코치님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내 발은 뇌를 거치지 않았고, 내 몸은 본능만 따랐다. 


그 본능이 축구 재능이면 참 좋았으련만. 그런 본능은 내겐 없었다. 나름 운동 신경 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만 앞섰다. 초보니까 당연한 일인데도 일단 냅다 뛰어보니 공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흥분만 했다는 게 문제. 골은커녕 그저 목적 없이 뻥뻥 차는 일이 대다수였다.



물론 처음부터 남다른 볼 감각을 자랑하는 초보도 있다. 많이 배우지 않았는데 첫날부터 골을 넣는 이도 있었다. 감탄했다. 부러웠다. 신기했다. 멋있었다.


골이 잘 들어가지 않으니 점점 뒤로 물러섰다. 수비가 더 편했고, 앞으로 전진하지 않았다. 다행히 수비는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나 보다. 돌진하는 상대의 볼을 걷어찼다. 또 뻥뻥 차긴 했다. 그래도 우리가 골을 먹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공을 저 멀리 보냈다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하지만 나도 골은 넣어봐야 했다. 사실 포지션이랄 게 없어서 공격하다 수비를 하기도 하고 수비하다 공격을 하기도 하고, 공수전환이 빨랐다. 그때 처음으로 골을 넣었다. 첫 골을 넣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함께 하는 멤버들은 다들 박수를 쳐주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상대팀도 박수를 보내줬다. 


코치님이 매번 다르게 팀을 구성하기 때문에 매주 팀이 바뀌었다. 우린 골 넣는 방향만 다를 뿐 한 팀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서로에게 관대했다. 칭찬해 주고, 박수 쳐주고, 함께 기뻐해주고. 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달콤한 골의 맛을 드디어 느꼈다. 주춤주춤 하던 본능이 다시 꿈틀거렸다. 수비도 재미있었지만 좀 더 나아가 공격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달콤한 골의 맛을 한번 더 맛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난 더 본능적으로 공을 따라가야 했다.


달콤한 골의 맛을 본 이후 자신감이 생겼다. 함께 하는 회원들은 “많이 좋아졌다”며 한 마디씩 기분 좋은 말을 해줬다. 빈말일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 같은 말을 했으니까. 축구에서 칭찬과 응원은 진심일 수밖에 없으니까. 


첫 골의 달콤함을 맛본 뒤 더 적극적으로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지만 냅다 달려 보기도 했다. 어떤 때는 한 경기에서 두 골을 넣기도 했다. 그 짜릿함과 뿌듯함이란. 


물론 체력은 아직이었다. 골 맛을 알아버린 나는 공을 보고 냅다 달려버렸고, 골 맛보다 진한 피맛이 목을 감쌌다. 완급 조절 없이 냅다 달리니 흡사 불나방과 같은 움직임이었달까. 짧은 경기 시간임에도 불구 교체를 원했다. 


하지만 교체 후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면 금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난 왜 이렇게 숨이 찰까. 왜 끝까지 뛰지 못하고 먼저 교체를 원할까. 체력 탓만 할 수 있을까?


이후론 골의 맛보다 완급 조절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기본적인 체력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골의 달콤함만 느끼려 하다간 이도 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흥분을 가라앉혔다. 한 템포 쉬어도 봤다. 경기 전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꼭 먼저 교체해 달라고 하지 말자. 


고백하건대 이렇게 마음먹고도 몇 주간은 바로 교체를 원했다. 그렇다. 난 오기가 없는 편이었다. 오기보다 자기 합리화가 편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로선 혼자 다진 이 각오가 바로 적용될 리 없었다. 그래도 매번 다짐을 해봤다. 조금씩, 천천히. 


그러다 처음으로 교체 없이 풀로 뛰는 날이 왔다. 교체한다고 해볼까? 망설이다가도 그 마음을 넣어뒀다. 서있더라도 교체 없이 있어보자. 다들 나만큼 숨 차지만 나가지 않잖아. 엄청난 오기랄 거 없지만 내 기준 상당한 오기를 부려봤다. 그런데 이 조그만 오기가 결국 내 다짐을 성공시켜 줬다. 


그때 골의 맛만큼 달콤함을 느꼈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도 해보는 것. 그 뿌듯함은 골을 넣는 달콤함 만큼이나 달달했다. 속으로 나 자신을 칭찬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내 다짐을 내가 알고, 내가 해냈으니까. 


내가 해냈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해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하다 보면 해내게 된다. 골도 넣게 되고, 교체 없이 뛰어도 보고. 그렇게 하나씩 해내가는 나의 축구가 점점 재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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