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방울 Oct 11. 2022

로3의 시작은 돌잔치와 함께

#13. 2억을 준다고 해도 다시 못할 짓

로스쿨 과정에서 무슨 과목부터 공부할지 매번 결정 장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느 영역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시험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이나 기본적으로 소화해야 하는 학습량을 고려하면 민법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그런 이유로 민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차례차례 다가오는 다른 기본법(헌법, 형법)이나 후사법(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 행정법)의 압박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민법을 마스터한 것도 아닌데 민법책만 계속 붙들고 있기에는 다른 과목들의 안위가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민법에 쏟는 시간의 절반만 투자해도 성과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과목들이 있는데도 민법은 선뜻 놓기가 꺼려진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서 가장 밀접하고 그래서 어렵고도 방대한 과목이 민법이다.


민법 정복이 이렇듯 요원한 가운데 교내 멘토링 특강과 선배들에게서 취합한 조언을 토대로 로3을 앞둔 겨울방학은 과감하게 공법에 투자하기로 했다. 어딘지 뜬 구름 잡는 것 같이 느껴지는 헌법과, 직전 학기부터 접하기 시작해 아직 낯선 행정법에 애써 친한 척을 하며 '변시까지 잘 지내보자' 부지런히 다독이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시린 겨울의 한가운데 아기들의 첫 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잔치를 하는 게 맞을까.'


이런 고민이 스쳤던 것도 같다. 이면에는 매달 통장에 따박따박 월급이 찍히고, 소득공제를 알뜰살뜰히 받던 사회인이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무런 소득 없는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잔뜩 위축된 심리가 부단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변시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수험생으로서 느끼는 중압감은 로스쿨에 입학한 그 순간부터 졸업할 때까지 줄곧 따라다니며 이전까지 누려온 문화생활을 향유할 권리나 유희의 즐거움을 앗아간다.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을 간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탈'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실력에 대한 확신이나 그간의 노고에 기반한 자기 정당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실력에 대한 확신이란 건 당연히 없고, 육아와 병행하느라 부족한 공부시간이 마음에 걸렸지만 막상 아기들의 생일이 가까워지자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가까운 친척들과 가족만 초대해서 밥 한 끼 같이 먹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온라인 돌잔치 장비 대여업체 가운데 최저가로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업체를 고르고, 가까운 떡집에서 첫 돌을 새긴 소량의 백설기를 주문했다. 전날에는 산후조리원 제휴 스튜디오에서 계약한 패키지 일정에 맞춰 가족사진도 찍었다.


아기들에게 입힐 한복만 같은 대여업체에서 저렴하게 빌려놨을 뿐, 돌잔치 당일과 스튜디오 촬영일 모두 나를 위한 메이크업이나 드레스는 망설임 없이 생략했다. 돌잔치를 열 것인지 말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고민했던 것과는 달리 메이크업이나 드레스는 고민 자체가 되지 않아 오히려 편했다. 일상복이 된 트레이닝 고무줄 바지를 그날은 입지 않았을 뿐이다. 마냥 사랑스러운 아기들은 하이라이트인 돌잡이에서 각각 돈(지폐)과 연필을 고르고, 친지들의 축하 속에 무난히 돌잔치를 치렀다.  


그즈음 친구가 보내줘서 기록을 시작한 다이어리에는 인근 백화점, 마트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유리드믹스', '리틀 킹콩' 같은 유아 대상 강좌명이 '민사기록특강', '공법기록특강' 등 교내에서 진행하는 특강들과 나란히 표시돼 있다. 교내 특강과 시간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아기들의 개월 수에 맞는 문화센터 강좌를 부지런히 찾아 예약에 성공하면, 남편과 함께 이곳저곳 순방을 다니던 시절이다. 밀가루나 미역, 국수 같은 흔한 요리 재료들이 문화센터 강좌에서는 아기들의 훌륭한 촉감놀이 대상으로 쓰인다는 사실도 그때 배웠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을 남편 혼자 데리고 외출하는 일은 쌍둥이 유모차가 있어도 위험천만하다. 그래서 베이비 카페와 문화센터, 국가필수 예방접종일로 빼곡한 다이어리의 일정은 늘 부부가 같이 소화하면서 아이 한 명씩 케어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남편이 로스쿨 앞에서 말없이 차를 세우면 나는 교내 특강을 들으러 가거나 열람실에서 공법 교재를 펼치며 아무렇지 않게 로스쿨생으로 돌아왔다.


육아는 영화를 본다든가 쇼핑을 하러 가는 잠시 잠깐의 소확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생활을 완전히 할애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나에게서 파생한 소중한 생명체가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 '돌봐줄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아기들과 보내는 시간은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기 위해 애썼다. 실상은 무념무상에 가까웠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누가 나한테 2억을 준다고 해도 이 짓은 다시 못할 것 같아."


로3이 시작되던 그해 1월은 동기들에게는 지긋지긋한 변시가 마침내 끝난 달이기도 했다.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난, 시험을 치른 지 일주일이 막 지난 친구는 아내와 살던 로스쿨 근처 신혼집을 정리하기 전 내가 미리 부탁한 대로 변호사시험용 법전이 든 쇼핑백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는 변시가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분량의 수기 답안과 학습량을 소화하기 위해 스스로 원칙을 세워 철저히 지킨 케이스이다. 원래도 성실했지만 3학년이 되고부터는 근력 유지를 위해 매일 아침 푸시업(Push-up)을 50회씩 하면서 체력 관리를 하고, 타이머로 '순공 시간'을 측정해서 단 하루의 예외 없이 10시간을 꼬박꼬박 지켰다.  


열람실 자리를 정리하러 왔다가 나와 마주친 다른 동생은 변시 기간에도 불안한 마음에 결국 마지막 민사법과 선택법 시험 전날 밤을 꼴딱 새워 공부하고 시험장에 들어간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힘겨운 관문을 통과한 동기들이 미련 없이 수험서를 폐기 처분하고 학교를 떠나는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뇌리에 남았다. 홀로 남겨진 자의 씁쓸함과, 어두운 터널에도 끝은 있다는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일 년 뒤 저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방의 날은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