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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방울 Oct 04. 2022

복학생 아줌마, 프로 혼밥러가 되다

#12. 짠내 나는 로스쿨 생활기 - 밥값 아끼고 걷기 운동도 하고

출산하고 학교에 돌아오니 로스쿨 입학 기수에서 1년 늦은 다음 기수와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다. 동기들은 3학년 2학기, 나는 2학년 2학기- 이미 변시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는 동기들과 일상적으로 밥을 먹기도 애매하고, 다음 기수 몇몇 아는 이들에게 수업을 같이 듣는다는 이유로 밥 먹는 데 끼워달라고 할 정도로 친화력이 있는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친한 동기들과, 또는 스터디 사람들과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혼밥'을 택했다.


요즘 센스 있는 식당은 혼자서 밥 먹기 좋은 구도의 좌석을 별도 배치할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혼밥러'들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지만, 수년 전 첫사랑과 헤어지고 기약 없는 싱글로 지내며 휴가 때마다 뉴욕, 홍콩을 경유한 파리 등지로 홀로 여행을 다닌 나는 원래부터 혼밥 하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고 꽤나 즐기던 사람이다.


기자로서 항상 분주하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던 어느 휴가는 경기도 남양주의 외딴곳에 있는 원룸형 고시원을 예약해서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 주변에는 흔한 편의점조차 없어서 삼시 세끼를 건강한 나물 반찬 위주의 고시원 식당에서 먹고는 근처 논밭을 찬찬히 거닐었다. 불현듯 그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고시원이 아직 있는지 검색해본 적도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느릿느릿 꼭꼭 씹어먹을 수 있는 것은 혼밥러가 누릴 수 있는 최대 장점이다. 어려서부터 행동이 굼뜨고 밥 먹는 속도가 지독하게 느린 나로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식사를 할 때 어느새 모두 빈그릇인 채로 나의 수저가 오가는 모습만 덩그러니 바라보고 있는 경험을 숱하게 했다. 아직 맛있는 반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왠지 모를 중압감에 수저를 놓으며 다 먹었다고 할 때의 안타까운 심경이란.    


로스쿨에서는, 특히 변시가 다가올수록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가까운 교내 식당에서 최대한 밥을 빨리 먹거나 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다른 식품(선식, 샌드위치 등)으로 대체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늘 공부할 분량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으니, 나도 답답한 마음에 밥 먹는 속도를 높이려고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30년 넘게 굳어진 글씨체를 교정하는 데 한계를 깨달았듯 느리게 먹는 사람이 갑자기 빠르게 먹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혼밥러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같은 식당에서 어정쩡하게 아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이다. 어색하고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런 경우의 수를 줄이면서 식비까지 아낄 수 있는 묘안이 있었으니, 그것은 로스쿨 주변의 식당가를 피해 나만의 아지트 같은 식당을 발굴하는 일이었다.


로스쿨 주변은 해당 캠퍼스 근처에서 유독 물가가 비싼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법과대학이 법학전문대학원으로 변모하면서 상대적으로 유복한 가정의 자녀들이 몰려, 로스쿨 주변 식당들이 단합해서 가격을 올렸다는 풍문을 들은 적이 있다.


풍문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로스쿨 근처 중국집의 볶음밥 가격이 6,000원이라면 내가 다닌 정문과 서문 사이에 있는 중국집의 같은 메뉴는 4,000원이었다. 후자로 가려면 로스쿨에서 최소 10분은 걸어야 한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낙엽이 아름답고, 봄에는 만발한 꽃이 아름다운 정문 사잇길을 그렇게 걸었다. 캠퍼스 전체가 언덕이나 다름없던 학부에서는 누릴 수 없던 평지의 호사랄까.


로스쿨생들이 배달 음식 외에 가장 많이 먹는 가까운 교직원 식당의 백반 가격이 기본 4,500원에 특식 5,000원, 로스쿨 주변의 밥집 백반이 6,000원이었는데, 그보다 단가가 낮고 좀 더 걸어야 하는 식당들을 발굴해 돌아가면서 끼니를 해결했다.


앞서 언급한 중국집 외에도 정문 근처의 한솥 도시락, 떡볶이집, 그리고 지금까지도 남편과 그리워하곤 하는 서문 근처의 식당이 그것이다. 기왕이면 밥을 먹자는 마인드로 중국집에서는 볶음밥을, 한솥 도시락에서는 단가가 낮은 치킨 마요나 도련님 도시락을, 이름까지 착했던 떡볶이집에서는 떡볶이나 소떡소떡을 주로 먹었다. 떡볶이는 1인분 1,500원으로, 역시나 로스쿨 근처보다 반값 정도로 저렴했다.


정문보다  멀어서 15 정도를 걸어야 하는 서문에 있던 식당은 자그마한 체구의 아주머니 혼자 운영하면서 놀랍게도  메뉴를 2,500원에 팔던 곳이다. 내가 꼽는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계란 프라이가 가지런히 올라간 비빔밥. 계좌이체도  되고 현금 결제만 가능해서, 어느 날은 깜박 잊고 지갑을  가져온 사실을 깨닫고 남편에게 급히 연락해 계산한 적이 있다. 남편도 그때부터   비빔밥의 맛을 알게 되어 종종 냄비를 가지고 가서 포장해와 먹었다.


변시보다 더 힘들었던 6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제1차 모의시험 공법 시험을 마치고, 잔뜩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서문까지 걸어가 나만의 힐링푸드를 맛본 그날의 포만감은 인생에서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여기 비빔밥 주세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지런히 혼자 조리하기 바쁜 아주머니에게 단골 메뉴를 주문했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용기 내어 음식을 추가해보기로 한 것이다.


"아, 칼국수도 주세요."


비빔밥과 칼국수를 나란히 두고, 아기자기한 나물과 고추장의 매콤 달콤함에 따뜻한 멸치국물이 제법 잘 어우러진 조합을 찬찬히 음미했다. 5,000원이면 로스쿨 근처 교직원 식당에서 특식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요즘 말로 플렉스(flex)가 필요한 날이었다.


때마침 먼저 변호사가 된 동기이자 친구에게서 '6모 시작했지? 힘들었겠다'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로스쿨에서 유일한 동갑내기로, 같은 학부 법대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5년을 행원으로 일하다 나와 같은 나이에 변호사의 꿈을 안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멋지게 해낸 친구. 당장 내일 하루 종일 치를 형사법부터 모레 민사법과 선택법, 8모, 10모, 변시까지 앞으로 헤쳐가야 할 나날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메뉴 두 개를 시키고 싶을 정도로 영혼이 허기진 날은 그날이 유일했던 것 같다. 이후로는 다시 비빔밥만 시키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나지 않으니 돌아가는 길은 걷기 운동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스터디하고 있는 거 있어?"

"아직 없어요. 왜요 언니?"


밥 같이 먹자는 얘기는 못 꺼내도, 교내 배드민턴 동호회를 하면서 알게 된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의 동생에게 스터디 하자는 제안은 복학과 동시에 했다. 거기에 학부 동문 모임에서 알게 된 동생들을 엮어 소규모 그룹을 만들고, 어떤 공부를 같이하면 좋을지 일정을 짰다. 그때부터 변시 거의 직전까지 큰 변동 없이 그 그룹에서 이런저런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아침 8시에 모이는 기상 스터디와 병행했다.


혼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도, 지난한 변시 준비를 오롯이 혼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법학 공부 자체는 나의 우주에서 철저히 홀로 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 매일 아침 일어나 일정한 시간에 열람실에 도착해서 공부할 자세를 갖추고,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사례형 기출문제를 눈 딱 감고 풀어보는 연습을 하며, 기록형의 감을 잡기 위해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써보는 일은 같이 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된다. 적어도 스스로의 의지가 약한 나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자기 관리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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