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집돌이와 살고 있습니다.

내향형 아이(I)와 내향형 엄마가 사는 법

by 책봄

오늘도 실패했다. 벌써 3일째다.


"후야, 좀 나가자."

"싫어."

"자전거 탈래? 아이스크림 사러 갈까? 아님 축구는 어때?"

"아니. 엄마 혼자 갔다 와."

"다른 애들은 못 나가서 난리라는데 너는 왜 그러니?"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오는 병이 있다. '나가자 병'. 눈 뜨자마자 현관문 앞에 서서 '나가자, 나가자' 하는 시기다. 후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이 아이는 언제나 집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외출을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쓰레기조차 내 마음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음식물처리기를 사야 했다.


3월의 화창한 어느 날,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를 할 때도 그랬다. 온 가족이 순차적으로 감염되는 바람에 열흘을 넘게 집에만 있었다. 아이는 단 한 번도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잘 놀았다.


'어떻게 애가 저럴 수 있지?'



MBTI 검사를 해 볼 필요도 없이 아이는 완벽한 내향형 아이 'I'가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은 모두 내향형이다. 그것도 80% 이상의 비율로 'I' 성향이 매우 높게 나온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신중하고 깊게 고민하는 편이다. 여럿이 만나는 자리가 불편해서 친구도 거의 일대일로만 만난다. 예전에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오해를 받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요즘은 MBTI가 워낙 대중화된 덕인지


"제가 I 여서요. 낯을 가려요.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라고 말하면 상대가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MBTI가 고맙기까지 하다.



내향형인 나는 내가 싫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인기 많은 친구는 늘 외향형이었다. 목소리도 크고 당당했다. 아무 친구한테나 쉽게 말도 잘 걸고 새로 산 학용품이나 옷도 거침없이 자랑하는 아이들. 말도 어찌나 재미있게 잘하는지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 친구들이 신나게 떠드는 동안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웃는 역할을 했다. 예능프로그램으로 따지면 가장 끝자리, 원샷도 비치지 않는 인지도 제로, 그 자리에서 말이다. 가끔 우르르 모여 친구들과 노래방에 갈 때가 있었다. 대부분 가기 싫다는 말을 못 해 억지로 끌려가는 분위기였다. 막상 가서는 분위기를 고려해 소찬휘의 'Tears' 따위를 목청껏 부르고 조용히 전사하는 아이였다. 때로는 인기 많은 친구들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독설을 날리고 뒤에서 후회하는 소심한 아이('I'). 그게 나였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새롭게 태어나 보기로 했다. 외향형의 인기 많은 친구들처럼. 그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서 동기들을 먼저 찾아 말을 걸고 친한 척 들이댔다. 하지만 막상 신입생 OT에서 그들과 대면하고는 한마디도 못했다. 그 시절 싸이월드 찌질이가 나였다. 온라인에서만 활개 치는.



이제와 생각해보면 후회된다. 그때 내가 나를 좀 더 솔직하게 내보였다면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외향형을 흉내 내고 싶었을까? 결국 나는 뼛속까지 내향형이었다. 아마 상대에게 어색함, 수줍음을 다 들켰을 것이 뻔하다. 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거기 있다. 서로 불편하니까.


내가 내향형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수용하게 된 건 나를 닮은 아이를 낳고부터다. 유전의 힘은 무섭다. 아이는 나를 쏙 빼닮았다. 처음 가는 장소, 사람을 극도로 불편해했다.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이 타면 엄마 뒤에 숨고, 부끄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볼 때면 매번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참 다행인 것은 아이가 나를 닮은 덕분에 나는 아이의 많은 면이 이해되었다.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다 알 것 같았다.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품어주면서 어린 시절 나도 함께 위로받았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일이다. 아들의 유치원 친구 2명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기 전에 헤어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그날의 파티는 밤 9시까지 이어졌다. 파티는 즐거웠고 아이도 좋아했다. 그런데 그날, 집에 돌아온 후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했다.


'분명 재미있게 놀았는데 갑자기 왜 우는 거지?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진정된 아들이 하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공감이 돼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루 종일 내 마음대로 못하고 너무 힘들었어. 엉엉."


그렇다. 우리는 내향형이다. 마음 한켠 언제나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사는. 분위기에 맞춰 놀다 보면 즐겁긴 하지만 조용한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만 회복되는 내향형. 어린아이에게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아이를 달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무의식 중에 우리 아이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외향형으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절대로 무리한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 수요일, 목요일 중간 하루, 이틀쯤은 꼭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주말도 마찬가지. 요즘처럼 나들이 가기 좋은 날에도 주말 중 하루는 꼭 집에서 온종일 쉰다. 충전해야 내일을 살 수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등원하고 남편이 출근한 뒤, 잠깐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윙윙대는 냉장고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적막, 막 널어놓은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 따끈하게 우려낸 차 한잔의 따뜻함을 느끼며 잠시 생각을 비우고 한 템포 쉬어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할 기운이 생긴다.


안 되겠다. 아직 멀었다. 나를 더 사랑하고 인정해야겠다. 내향형인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우리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도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7살 집돌이 아들의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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