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4일.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갔다. 그 해는 코로나로 등원 여부가 불투명했다. 언제 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아이는 국공립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교육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어야만 등원을 할 수 있었다. 그게 5월이었고 그것도 일주일에 겨우 한 번 갈 수 있었다. 잊을 만하면 등원을 하고 다닐 만하면 나오지 말라고 하니 아이의 등원 거부도 점점 심해졌다.
등원 첫날, 나는 아이보다 더 긴장했다. 웃으며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고 얼마나 울지, 결국 들어갈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준비를 마치고 차를 탈 때까지는 괜찮던 아이가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었다. 선생님은 먼발치에서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지 않자
“어머니, 들어가면 잘할 거예요. 괜찮아요.”
하시며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셨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달래 볼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하지만 아이는 계속 울었다. 그 후로도 서너 명의 선생님이 나오셨다가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시길 반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원장 선생님께서 직접 나오셨다. 아이랑 교실까지 같이 가도 좋다고 하셨다.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올라 교실까지 올라갔다. 아이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절대로 엄마와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 내 목을 더 꽉 잡고는 놓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선생님은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 연락드릴게요." 하시고는 아이를 안고 교실로 들어가셨다. 아이는 엉엉 울며 끌려가다시피 교실로 들어갔다.
이렇게 보내는 게 맞을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이를 보내고 혹시라도 원에서 전화가 올까 싶어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얼마 후 원감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는 잘 지내고 있단다. 교실에서도 울긴 했지만 이내 그치고 활동에도 잘 참여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씀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아이를 믿어볼 수밖에.
기다리던 하원 시간, 아이는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자신이 관찰한 친구들, 선생님 이야기를 아낌없이 쏟아냈다.
다행히 유치원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마음이 놓였다. 집에 돌아와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여다보며 같이 이름을 외웠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활동사진을 보며 얼굴과 이름을 매칭 했다. 낯선 친구들에게 적응시키기 위해서였다. 등원 거부는 계속됐다. 매일 아침 울었다. 항상 같은 패턴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부터 아이는 몸이 굳고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흔들렸다. '이렇게 까지 해서 보내는 게 맞을까?' 불안했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원할 때는 항상 밝은 모습이잖아. 선생님의 피드백도 좋았고. 교실에서도 울긴 하지만 수업에는 즐겁게 참여한다고 했어. 아이도 좋아했고.'
우는 아이를 보며 애써 태연하게
"후야, 어제도 그저께도 들어가는 데 성공했어. 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용기를 내 봐. 울고 가든 웃으며 가든 그건 너의 선택이지만 엄마는 집으로 갈 거고 1시에 너를 데리러 올 거야.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아이는 포기한 듯 울면서 들어갔다. 울지 않고 등원하는 방법을 찾는 게 남은 과제였다.
파워 알약!이라고 들어 봤니?
아이에게 아침마다 우는 이유를 물으니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라고 했다. 그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엄마랑 헤어지기가 싫다니.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원을 옮긴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선생님께 부탁할 문제도 아니고 오롯이 나와 아이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등원 거부 극복 이야기부터 전문가들의 육아서적을 온통 뒤졌다. 그중 가장 납득이 가는 이유를 찾았다. 정확한 설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요점은 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는 뇌를 다른 생각으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아이의 생각을 전환하게 하는 것! 나는 ‘파워 알약’을 만들었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랄까?
내가 약사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고 진짜 알약을 만들 수는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직접 개발하고 싶었다. 눈물을 그치고 웃으며 안녕할 수 있는 약. 현실에서 파워 알약은 평소에는 잘 사주지 않는 초콜릿이었다. 이제 아이가 초콜릿은 파워 알약이라고 믿게 하는 일만 남았다. (별 짓을 다한다 정말.)
주말 아침 아이와 함께 슈퍼에 갔다. 평소에는 절대 사주지않는 초콜릿을 한 움큼 사 왔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사실 이 초콜릿은 파워 알약이야. 이걸 먹으면 용기가 생기고 눈물이 나지 않는데! 정말 놀랍지 않아? 사실인지 너무 긍금해. 빨리 실험해보고 싶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연기를 하는 나도 황당했다. 한편으로는 정말 그런 알약이 있어서 울지 않고 가면 좋겠다는 진심도 담겨있었다. 그런 간절함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1단계 아이가 등원할 때 패턴을 계속 상기시키며 감정 읽기를 한다.
“아들아, 유치원 갈 때 차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잖아. 그럼 갑자기 엄마랑 헤어지기가 싫어지고 조금 긴장되고 눈물이 나지? 맞아. 엄마도 아들이랑 헤어지기 정말 싫어. 그리고 엄마도 어렸을 때는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어서 계속 눈물이 났어. 푸하하하하 너무 웃기지? 엄마는 20살 때까지도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어서 운 적이 있다니까. 푸하하 하하하.”
일부러 더 오버해서 웃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실제로 나는 20살 때,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면서 엄마와 헤어지는 게 무섭고 슬퍼서 엉엉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우스운 추억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 아이가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등원할 때마다 우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재미있는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계속 되뇌었다. 내가 불안해지지 않기 위해서.
“아들이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눈물이 나는 거야. 당연한 거야. 엄마도 아들을 너무 사랑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트에서 사 온 초콜릿 있지? 그건 사실 파워 알약이야. 그걸 먹으면 용기가 생기고 눈물이 나지 않는데! 정말 그런지 너무 궁금하지 않아? 내일 유치원 갈 때 꼭 시험해보자!”
한껏 오버해서 말했다. 일부러. 아이가 재미있는 놀이처럼 생각할 수 있도록.
2단계 아이가 스스로 소리 내서 이야기하게 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내일 아침에 파워 알약 먹고 유치원 갈 거잖아. 그거 먹으면 용기가 생겨? 안 생겨?”
“생겨!”
“파워 알약 먹으면 눈물이 나? 안 나?”
“안 나!”
“엄마 믿지?”
아이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지만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실 파워 알약은 나에게도 주문 같은 거였다. 등원 거부하는 아이를 두고 용기 있게 돌아서기 위한 주문. 나는 진짜 그 파워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파워 알약 개봉!
월요일 아침, 차에서 내리기 전 다시 한번 다짐을 외쳤다. 횡당보도를 건너기가 무섭게 말을 건넸다.
“아들아, 드디어 시험해 볼 때가 됐어. 빨리 한번 먹어보자.”
하고 빠르게 껍질을 벗겨 아이 입에 초콜릿을 넣어주었다. 아이가 초콜릿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도 전에 설레발치며 말했다.
“우와! 눈물이 진짜 안 나잖아! 용기가 생기고 있나 봐! 우와~ 이제 유치원에 한번 가보자.”
하며 손을 잡고 가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아이는 두말없이 바로 따라왔다.
그리하여 아무런 거부도 울음도 없이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감 선생님은 놀라시며 “어머니 비결이 뭐예요?”라고 물으셨고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파워 알약을 먹었거든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원감 선생님은 웃으시며 울지 않고 들어가는 아이에게 아낌없이 칭찬의 멘트를 날리셨다.
진짜 파워 알약의 효과였을까? 그럴 리가. 나는 아이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기분 좋게 등원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기를 쓰며 방법을 찾는 엄마의 진심을. 그 정성이 갸륵해서 아이가 속아준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의외로 속이 깊은 면이 있으니까.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가 울지 않고 등원하던 날, 원에서 만나는 모든 선생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단다. 아이에게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도 울지 않고 들어갈 수 있구나.’
하고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경험. 그렇다고 등원 거부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혼자 들어가는 것을 어색해했다. 아이와 나는 항상 유치원 앞에 서서 아이의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누구든 같은 반 친구가 오면 그제야 엉겁결에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유치원의 모든 선생님들이 나와 우리 아들을 알아보셨다.
“어머니 오늘도 또 서계시네요.” 하시며 아이 친구가 어서 오기를 한 마음으로 바랐다.
6살이 된 어느 날, 어수선한 3월의 등원 길.
5살 아이가 1년 전 우리 아이처럼 유치원 앞에서 엄마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시선이 향했다. 아이가 혼자 중얼거린다.
"나도 동생 반일 때 많이 울었는데. 파워 알약 먹으면 될 텐데.” 하더니
“내가 그때 참 많이 울었지. 바보같이 왜 그랬지?”
라며 여유를 부린다. 허세를 부리는 폼이 사내아이가 다 되었네 싶다. 이렇게 아이와 나는 잊지 못할 추억을 또 하나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