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전업맘에게 책육아란?

없는 살림에 책육아는 하고 싶어서

by 책봄

얼마 전, 남편 직장 동료가 술에 취해 전화를 했다. 그 집도 외벌이에 3살짜리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야, 글쎄 와이프가 아이 책을 사야 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60만 원만 줄 수 있냐는 거야. 아이 책 산다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비상금에서 조금 챙겨줬지. 그랬더니 이번에는 생활비가 모자라다고 돈을 더 달라더라고. 갑자기 왜 생활비가 부족하냐니까 아이 책을 사느라 다 썼다는 거야. 에휴. 도대체 책육아가 뭐냐?”


한참 이야기를 하던 남편이 전화를 끊고 묻는다.


“책육아가 뭐야? 애들 책이 진짜 그렇게 비싸? 우리 집에도 그런 책이 있어?”


그럴 리가. 그런 책이 있을 리가. 남편 동료의 와이프 마음이 이해가 됐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남들 다 읽힌다는 전집 하나를 내 마음대로 사 줄 수가 없어 남편에게 돈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 처지.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애들 책이 왜 그렇게 비싼거야?


책을 좋아하는 아이. 엄마들의 로망이다. 몇 해 전부터 ‘문해력’이란 말이 화제가 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책을 읽지 않으면 공부를 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 모든 과목이 독서로 귀결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가 말도 하기 전부터 고가의 전집을 사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학교 주변이나 젊은 엄마들이 많이 산다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어김없이 어린이 서점이 있다. 마트나 쇼핑몰 안에서도 흔히 보인다. 주로 유명 전집들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호기심에 몇 번 방문해 본 적이 있는데 적지 않은 가격에 놀랐다.


SNS는 어떤가? 거실 한가득 아이들의 책으로 둘러싸인 집이 흔하다. 그럴때면, ‘책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쓴 거야?’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만 우리 아이에게 제대로 못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이 찾아온다.


현실은 외벌이. 전업주부. 책을 구입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두 돌까지 우리 집에는 아이 책장조차 없었다. 책을 읽어주는 음성지원펜이나 DVD, CD 흔한 사운드북도 없었다. 아이와 하루하루 일과를 보내는 일조차 너무 버거워 아이 책을 찾아보고 구입할 여유가 없었다. 그때까지도 오롯이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거나 업어야만 잠을 잤기 때문에 잠자리 독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아이가 누워있어야 책을 읽어주는 것 아닌가?’ 우리 아이는 도대체 누워있는 법이 없었으니 책을 읽어줄 생각도 못했다.


내가 전집 시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이 병원에 다녀오는 길. 길거리에서 만난 영업사원을 통해서였다. 아이 발달 검사를 해준다며 연락처를 받아 간 영업사원은 며칠 뒤 우리 집에 찾아왔다. 거실에 앉아 3*3 사이즈의 책장이랄 것도 없는 책장을 쑥 훑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네’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부터 연설이 시작됐다. 유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줘야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부터 영역별 필요한 도서 목록까지 읊어주며 전집을 권유했다. 게다가 무료로 해준다는 아이 발달 검사에서는 아이의 언어영역이 상당히 떨어진다며 책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다. 마침 아이가 언어치료를 받던 중이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당장 전집을 구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금액이 놀라웠다.

“남편 하고 상의 좀 해볼게요.”

“어머! 어머니 남편하고 상의할 게 뭐 있어요. 아들 하나인데 안된다고 하겠어요? 아이 아빠가? 이런 건 그냥 어머니가 강하게 하셔야 해요. 아빠들은 잘 몰라요.”

영업사원의 태도는 일관되게 단호했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고리타분한 엄마를 지켜보는 눈빛이었다. 허겁지겁 영업사원을 내보내고 당장 번호를 차단했다. 나만 아는 소심한 복수였다.


‘내가 돈이 있어도 저 출판사 책 사나 봐라!’



도대체 책육아 어떻게 하는 건데?


그날 이후 책에 대한 방황은 계속됐다. 내심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조바심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심지어 '책육아'라는 것이 있단다. 사교육 하나 없이 책만으로 아이를 명문대에 보낸 엄마도 있었다. 당장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책을 사주려고 이것저것 찾다 보니 인터넷 공구를 알게 됐다.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공구 목록을 확인하며 ‘세상에 이렇게 좋은 책이 많다니. 한 권이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하는 불안감과 구매할 수 없는 경제력에 좌절했다.


한바탕 불안의 파도가 지나고 다시 정신이 들었다.


‘남들이 어떻게 하든 나는 내 현실에 맞게 하면 되지 뭐.'


그날부터 인터넷 공구, 영업사원을 통해 얻은 좋은 책 목록을 수집해 중고로 구입하거나 대여했다. 새로 나온 신간들은 중고가도 꽤 고가였다. 그런 경우 유료 대여 사이트에서 구해서 보여줬다. 아무리 평이 좋은 책이라 해도 우리 아이는 안 좋아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저렴하게 대여한 책이니 억지로 다 읽혀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좋았다. 기간이 지나면 돌려주면 그만이니 뒷처리의 번거로움도 없었다.


집에는 3*3 사이즈의 작은 책장을 하나 더 구비했다. 한 칸 정도는 늘 비워두었다가 대여한 책을 넣거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했다. 중고로 책을 살 때는 원하는 책의 키워드를 알림 설정해놓고 며칠간 대략적인 가격대를 미리 파악한 후 아동수당이 입금되는 날 구매했다. 아동수당은 아이의 책값으로만 썼다. 다음 수당이 들어올 때까지는 구매한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새 책이 필요할 때는 도서관을 이용했다. 유치원에서도 책을 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가 직접 고른 새로운 책을 가져오기도 했다.


책장을 늘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책에 지나치게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중고로 구입한 책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나눔 하거나 다시 중고시장에 헐값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비워진 책장에 다시 새로운 책을 끼워 넣는 식으로 유지했다. 좋은 책은 너무 많고 다 읽어주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오늘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책은 없었다. 보여주고 싶은 책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여윳돈이 생겼을 때 사주면 그만이었다. 도서관에 들렀을 때도 숨겨 둔 목록을 꺼내 대여하면 방대한 책 중에 고르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래서 아이가 지금 책을 좋아하는 거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싫어하지 않는 정도다. 책과 장난감이 있다면 당연히 장난감이 먼저이고 TV나 게임이 먼저인 평범한 아이다. 그래도 책과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책을 직접 읽어주고 아이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려 정보를 수집한다. 서점에 정기적으로 데려가 읽고 싶다는 책은 망설임 없이 사준다. 아이에게 매달 25일 나라에서 책을 사라고 수당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10만 원어치 책을 마음껏 사도 좋다고 하니 신이 나서 고른다. 아이가 고른 책 중에는 포켓몬 도감 같은 도저히 돈 주고 사기 아까운 책들도 끼어있다. '한 권쯤은 괜찮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냥 눈감아 준다.


가족이 다 같이 서점에 가다 보니 독서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공대출신 남편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로 주식 관련 책이지만 편독이야말로 독서에 빠지는 지름길이라기에 그냥 둔다. 아이도 남편도 나도 목적 없이 그냥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문해력이나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는 제쳐두고 재밌어서 읽게 되는 독서를 지속하는 게 꿈이다.


이렇게 보면 책육아의 핵심도 결국은 엄마가 불안을 내려놓고 힘을 빼는 것에 있는 게 아닐까? 그래야 지속할 수 있으니까. 돌아보니 그때 그 영업사원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책육아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는 소중한 만남이었으니까.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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