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우리 집에는 잔치가 많았다. 외롭게 자란 엄마는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밥 해주는 걸 좋아했다. 남다르게 우애가 좋았던 아빠의 형제들은 자주 우리 집에 모였다. 생일, 연말, 연초, 복날, 김장, 명절 등등 작은 핑계만 있어도 엄마는 친척들을 불러 모았다. 여섯 형제에 각 집에 아이가 두 명씩 다 모이면 서른 명이 가까이 되는 식구였는데 손님맞이 교자상을 두 개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집 안에 있는 모든 테이블을 내놓았다. 작은엄마들이 미안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도울라치면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그것은 손님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나의 주방에 타인을 들이지 않겠다는 저항이었다.
엄마의 주방에는 엄마만의 규칙이 있었다. 그 규칙은 지나치게 세세해서 다 기억하기도 어려웠지만 엄마에게는 꽤나 진지한 부분이라서 아무도 그 규칙을 깰 수 없었다. 누군가 엄마 몰래 설거지를 하고 가는 날이면 엄마는 모든 설거지를 다시 시작했다. 작은 거라도 도우려 치면 엄마는 "내가 할게. 어차피 내가 해야 돼."라며 말렸다. 엄마 만의 강박 아닌 강박을 내려놓는다면 편할 텐데 엄마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휴직 후 함께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 먹으며 남편도 자주 주방을 드나들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고, 요리를 하고, 커피를 끓이며 수시로 들락거리는데 그때마다 내 눈에 밟히는 게 한둘이 아니다.
주방 행주는 왜 행거에 걸어놓지 않고 아무 곳에나 처박아 두는지, 수세미는 잘 펴서 말리지 않고 접어 놓는지, 사용한 컵은 왜 헹구어놓지 않는지, 주방가위는 왜 자꾸 서랍에 넣어두는지, 참기름과 들기름을 왜 자꾸 헷갈려하는지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부분들이 마음에 걸린다. 하나하나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주방일을 해보기로 결심한 남편 마음에 반항심이라도 생길까 속앓이를 하던 찰나, 며칠 전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카레를 만들겠다고 주방에 들어온 남편. 치킨너겟을 구우려고 잘 데워놓은 스텐 프라이팬에 카레고기를 투척하려는 남편을 본 순간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
"안돼!!!!!!!!!!!!"
스텐 프라이팬을 지켰다는 안도감과 함께 가슴속에서 참고 있던 화가 들끓었다. 이 남자를 어디부터 가르쳐야 할지, 가르친다고 곱게 듣기나 할는지 가슴이 답답해 입을 닫고 조용한 분노를 폭발하고 있을 때 침묵을 깨고 남편이 말했다.
"프라이팬에서 고기만 볶고 냄비에 옮기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큰 일도 아니구먼 왜 소리를 질러."
내가 이 남자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정말 프라이팬에서는 곱게 고기만 볶고 냄비에 옮길 생각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 그곳에 생각 없이 야채까지 집어넣고 야채가 좁은 프라이팬을 견디지 못해 사방으로 튀고 나서야 '프라이팬에서는 다 볶을 수 없구나'를 깨달을 터였다. 혹은 운 좋게도 프라이팬에서 무사히 야채까지 볶고 나서 거기에 기어코 카레를 부어버렸을지도. 그랬으면 뜨악. 거기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맞벌이란 이유로 누구도 요리를 잘하지 않았고, 전업주부가 된 후로는 주방 일은 주로 내가 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정해졌기에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주방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우리는 서로의 방식에 맞추어 조금씩 양보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새롭게 겪고 있다.
한평생 본인의 주방에는 아무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친 울타리에 갇혀 독박 살림을 한 엄마를 보고 얻은 깨달음으로 남편의 사소한 실수는 애교로 봐주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두 눈 꼭 감고.
설거지는 당신이 할 거지? 쓰레기는 분리수거할 거지? 내가 아끼는 컵은 물마실 때 쓰지 말아 줄래? 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