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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Sep 01. 2022

두통 일지 1. 왜 아플까?

건강하게 살고 싶다. 활력이 넘치게. 


요 며칠 계속되는 두통으로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종류를 바꿔가며 진통제를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까지 연이어 야근에 회식이었고, 아이는 열감기에 걸려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어제는 간신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 놓고 신경과를 찾았다. 


"그동안 힘드셨을 텐데 왜 이제 오셨어요?"


의사가 묻는다. 학창 시절부터 드문드문 시작해 20년 가까이 두통을 앓고 있으면서도 왜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이제야 왔느냐고 묻는 거다. 


사실 20대 때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임신, 출산, 육아로 어영부영 치료가 중단되었고, 그동안 진통제로 버티며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30대 후반까지 와버렸다. 그동안 두통이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졌는데도 치료를 미루었던 솔직한 이유는 쉴 수 있는 핑계가 '두통'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 아파. 조금만 쉴게."


내 무기였다. 아프다는데 아이도 남편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해했다. 그럼 나는 종일 누워 잠을 잤다. 남편이 없을 때는 가까이에 사는 친정엄마를 불러 앉혀놓고 나는 또 종일 누워 잠을 잤다. 꾀병은 아니었다. 정말 아팠으니까. 몸은 아파도 이렇게라도 종일 쉬는 게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친정엄마가 와 줄 수도 없고, 남편도 수시로 휴가를 낼 수도 없으니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적극적으로 치료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의사는 몇 가지 문진을 하고 검사를 권했다. 뇌 초음파를 찍었는데 혈류의 속도가 정상인에 비해 3배 이상 빠르게 흐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편두통이 나타나는 거라고. 그럼 왜 혈류의 속도가 이렇게 빨라졌을까?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소한 자극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헛웃음이 나왔다. 마치 당신을 예민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선고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보름치의 약 중 진통제 하나를 꺼내 먹었다. 불현듯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무슨 자극, 무슨 대단한 자극이 있었냐는 말이야! 그냥 일상을 살고 있을 뿐인데. 도대체 뭐가 자극이냐고! 이 바보 멍청이 같은 몸뚱이. 뭐가 힘들다고 이러는 거야 대체!'


그렇게 혼자 성질을 내다가 눈물이 났다. 그런 내가 싫어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 몸이 힘들다고 하잖아.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어도 내 몸이 힘들다면 나는 힘든 게 맞지. 그래, 쉬자. 쉬고 싶다잖아. 할 일은 좀 미뤄도 괜찮아. 큰일 나지 않아. 일단은 좀 쉬자.'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내려놓고, 채찍질하며 움직이는 대신 몸이 바라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30분 알람을 맞춰놓고 눈을 감고 쉬었다. 휴대폰도 끄고 암막 커튼을 치고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쉬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그 일이 힘들 수도 있고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 탓하지 않기로 하자. 나라고 뭐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냥 나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뤄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내 몸은 이 정도 일로도 힘들구나, 쉬고 싶구나. 그래 그럼 쉬어줄게.'


이렇게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알아채고 잘 달래고 달래며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부터 두통 예방을 위해 약을 복용하기로 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틈틈이 나의 두통 일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사소한 외부 자극에도 민감해지는 뇌가 솔직히 짜증 나지만 어차피 이렇게 타고났으니 관리하며 사는 법을 터득해보려고 한다. 더 건강하게 더 활력이 넘치게 살아보고 싶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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