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쓴 편지

- 순교자 '이순이 루갈다'가 남긴 편지

by 편지큐레이터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에는 산이 하나 있습니다. 승암산 혹은 치명자산으로 불리는 산이지요. 산 중턱에는 무덤이 하나 있는데, 그 앞에는 ‘순교자들의 묘’라는 표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일곱 명의 가족이 함께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묻힌 가족은 ‘초남이 동정 부부’라 불리는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가족들입니다. 부부는 물론 이순이의 시부모와 시숙모, 시동생, 시사촌동생의 유해가 한 곳에 모셔져 있지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유배길에 올라서도 순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던 이 가족들의 이야기는 이순이 루갈다가 남긴 편지 덕분에 세상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IMG_7363.JPG 이순이와 그의 가족들 6인이 함께 묻힌 '순교자의 묘'


이순이 루갈다는 활발한 신앙생활을 하던 집안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윤하 마태오는 성호 이익의 외손자로 천진암 주어사 강학에 참석하고, 명례방 김범우 집에서 열린 천주교 모임에도 참여하던 학자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권씨는 권철신과 권일신의 누이 동생으로,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정성을 다하던 분이었지요. 이순이는 열네 살 때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 때문에 세례를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문모 신부는 그에게 첫영성체를 허락합니다. 성사를 받겠다는 신념 하나로 나흘 동안 방에 들어앉아 기도하고 준비하는 이순이를 보며 세례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예수님의 몸을 모신 이순이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을 증거하겠다고 다짐한 것이지요. 그러나 당시의 풍습은 이순이의 원의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녀자가 혼인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용납되지 않던 시대였으니까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주문모 신부는 이순이에게 전주에 사는 유중철 요한을 소개합니다. 그 또한 천주교 신자로 동정생활을 원하고 있었거든요. 주문모 신부는 두 사람이 혼인을 해도 동정을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이순이와 유중철이 혼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순이의 친지들은 ‘천주쟁이와 혼인을 하는 것은 집안을 망하게 하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대합니다. 유중철이 ‘전라도의 사도’로 불리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순이의 오빠 이경도 가를로는 동생의 동정 생활을 지켜주기 위해 혼인을 성사시킵니다. 결국 이순이와 유중철은 1797년에 혼인을 하고, 서로 동정서약을 합니다. 부부로 살아가되, 서로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바치며 살아가기를 약속한 것이지요. 그러나 1801년, 가족들이 모두 옥에 갇히면서 이들의 ‘동정 부부’생활은 끝이 납니다. 유중철과 그의 아버지 유항검은 외국의 큰 배를 불러들여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고 했다는 ‘대박청래(大舶請來)’ 사건에 휘말려 옥에 갇히고, 몇 달 후 이순이와 그의 시가족들도 모두 관아에 끌려갑니다. 그들은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고문을 받지만,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부디 순교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달라고 말입니다.


IMG_7378.JPG 이순이 루갈다 모자이크 성화

감옥에 갇혀 칼을 차고 순교할 날을 기다리던 이순이는 어머니와 언니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혼인 후 자신이 어떻게 동정을 지켜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지 유언이 될 편지를 쓰지요. 이순이는 치명하는 일이야말로, 미천한 자신이 ‘진실 되고 보배로운 자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라도 어머니께서는 슬퍼하지 말고, 너그러이 참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다가 세상을 떠나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영원한 복락의 면류관을 쓰고 어머니를 모시러 오겠다고요. 그리고 동정에 관한 이야기도 남깁니다. 십여 차례의 유혹이 있었으나 주님께 의지하며 동정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친정에 있는 언니들에게 쓴 편지에서는 자신보다 먼저 잡힌 오라버니의 소식을 묻는가 하면, 시어머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치명하기로 뜻을 정했다고 전합니다. 자신은 은총 속에 있으니 염려하지 말고, 어머니를 잘 모셔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중철 요한의 순교 소식도 알립니다. 그의 시신을 감싼 옷에서 ‘누이여, 천국에 가서 다시 보자’는 쪽지가 나왔다는 기별을 받았다고요. 그러니 이제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죽음 밖에 없다며 하루빨리 치명자가 되는 은총을 누렸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이순이의 순교에 대한 바람은 하마터면 살아날 뻔 했던 경험 때문에 더 강렬해 집니다. 순교하는 게 마지막 소원인 그에게 압록강변 평안도 벽동의 관청 노비로 유배가라는 명령이 있었거든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이순이는 거세게 항의합니다. 그에게 하느님을 위해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래서 끌려가면서도 ‘천주를 위하여 죽겠노라’며 수령에게 나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러나 관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유배를 보냅니다. 이순이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치명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백여 리를 갔을까? 갑자기 이순이는 다시 감영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심문과 고문을 다시 받게 되지요. 그러나 이순이는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허락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강한 믿음이었으니까요.


IMG_7374.JPG 이순이 루갈다의 편지

치명자산에 있는 ‘순교자들의 묘’에 다녀와서 이순이 루갈다의 편지를 꺼내 읽습니다.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면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을까, 그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다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언제나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을 물려주신 분들이 바로 그들이니까요. 그리고 하느님께 특별히 청합니다. 박해를 받고 도망 다니면서도 이순이 루갈다의 편지를 나누어 읽고 필사하며 오늘날까지 전해주신 이름 모를 교우들의 영혼도 보살펴 달라고 말입니다.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가을호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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