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남긴 편지
며칠 전, 문구점에 갔다가 항공봉투를 봤습니다. 하얀색 봉투 끝에 파란색과 빨간색 마름모 문양의 줄로 테두리 쳐진, 해외로 편지를 보낼 때 쓰는 봉투 말이에요. 이 봉투가 한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릴 적 기억 때문입니다. 사우디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늘 그 봉투에 편지와 사진을 보내셨거든요. 저에게 항공봉투는 요술봉투였습니다. 먼 곳에 있는 아버지를 바로 곁으로 데려다 주는 봉투였으니까요. 그리운 사람이 어디에 있든, 그 봉투만 있으면 어디로든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 봉투로도 편지를 보낼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요.
제가 ‘보낼 수 없는 편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 덕분이었습니다. 1950년 즈음에 쓰인 편지를 들고 수신인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였지요. 이 오래된 편지의 존재를 알린 사람은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일하던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미군이 북한에서 노획한 문서를 정리하는 담당자였습니다. 1100여 개의 문서 상자를 살피며 정리를 하다가 1138번과 1139번 상자에서 빛바랜 편지들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상자 속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견딘 편지들의 사연은 다양했습니다. 인민군에 입대한 딸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집에 두고 온 트렁크 안에 옷과 내복이 있으니 동생에게 입히라’는 따뜻한 부탁이 있었고, 북으로 간 오빠에게 남에 있는 여동생이 쓴 편지에는 ‘건강하게 돌아오라’며 ‘집으로 올 때 내가 보낸 편지를 가슴에 꼭 품고 오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 ‘결혼 날짜를 잡아 놨으니 서둘러 집으로 오라’는 아버지의 편지도 있었고, ‘여기도 우체국이 있으니 걱정 말고 돈을 보내 달라’는 집 떠난 아들의 사연도 있었습니다.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혹은 북에서 북으로… 편지는 수신인을 향해 출발했지만, 60 여년이 지난 그날까지도 배달되지 못한 채 상자 속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미지 소장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디지털화 자료: 국립중앙도서관
이 편지의 존재가 알려지자 한 방송사에서 편지 배달부로 나섭니다. 천 여 통의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들을 정리하고, 현재 주소체계로 배달이 가능한 편지 몇 통을 찾아냅니다. 편지를 들고 받는 사람의 주소를 향해 떠나는 제작진을 보며 제 마음도 조마조마했습니다. 과연 몇 명이나 편지를 받게 될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지요. 편지는 다섯 명의 주인을 만났습니다. 아니, 주인이 아니라 ‘대리인’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동생이, 아들이 아버지 앞으로 쓴 편지를 여동생이, 남편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딸이 받았으니까요. 그들은 편지를 쓴 사람이 정한 수신인이 아니었지만, 60여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은 그렇게 편지 한 통으로 마주합니다. 60여 년 전에 도착했어야 할 편지를 읽으며 한 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분들을 보면서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편지를 앞에 놓고 형과 오빠와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는 그들이 우리 삼촌, 고모, 이모 같았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본 뒤, 저는 배달되지 못한 편지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미군이 노획한 편지를 정리한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라는 책을 읽고, 제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편지들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도서관 자료실에 접속해 1950년에 쓴 편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누렇게 빛바랜 종이 위에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연은 저마다 다른 글씨체를 하고 있었지만, 저는 많은 편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편지를 쓴 사람들이 제가 쓰는 언어로 글을 쓰는 같은 민족이었으니까요…
얼마 전,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 ‘하나의 민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계의 시선이 ‘평화’위에 모였고,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언제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의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고, 어쩌면 분단되어 지낸 세월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통일을 바라는 것은, 항공봉투에 사연을 담아도 편지가 가지 않는 그 곳에 그리운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신인에게 배달되리라 믿었던 편지가 갈 곳을 잃고 타국의 문서고에서 60년을 자고 있던 것처럼,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가족을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만날 수 없었던 분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남과 북에 있는 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그 날이 오면 저는 더 바빠질지도 모릅니다.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북에 가서도 하게 될 테니까요. 그럼 저는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이 쓴 편지와 덕원의 순교자 루치오 로트 신부님이 쓴 비밀 쪽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지요. 평원에서 태어난 유명한 화가가 가족에게 많은 편지를 남겼다고, 원산에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지키다 순교한 신부님이 의사에게 동료들의 질병을 알리고 약품을 부탁하는 비밀 쪽지를 남겼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쓰인 저 편지들을 읽어주고 싶습니다. 한 민족이었던 우리가 헤어져 이 편지들이 주인을 잃게 됐다고, 그래서 머나먼 타국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러다 편지의 주인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가슴 벅찬 일이 생긴다면, 아니, ‘그 편지의 수신인이 나’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쟁의 상흔이 깃든 여름,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저 편지들이 수신인에게 도착하는 기적 같은 날이 오기를, 통일기념우표를 붙인 편지가 우리 집 우체통에 도착하는 날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8년 여름호 -에 쓴 글